<중앙칼럼>학생이 교수를 폭행하는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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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모처럼 고등학교나 대학의 동창생들이 모이는 자리에 나가보면 으레 돋보이는 친구들이 몇몇 끼어있게 마련이다.어떤 중요하거나힘센 자리를 차지한 친구들,혹은 돈모으는 재능을 발휘해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는 친구들이다.그들은 좌중의 부 러움을 사거나시기심을 자아내게 하기도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반드시「존경」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권력을 차지하지도,富를 쌓지도 못했지만 그런 자리에서 늘상「존경」의 대상이 되는 친구들은 대학교수들이다.어렸을 적부터 허물없던 사이임에도 그들은 어딘가 보통사람들과 달라보이고 세속과는 다른 별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혹 권력이나 富의 주인공들은 좌중의 그같은 분위기를 멸시하고 무시하려는 태도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조차 虛張聲勢에 불과함을 마침내는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대학교수인 동창생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보면 그들이「고민덩어리」인 채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곧잘 받게 된다.하기야 고민없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마는 그들의 문제는 오직 끊임없이연구하고 이 나라 장래를 떠메고 갈 젊은이들을 올바로 이끌어가야 하는 그들 본래의 사명이 학교 안팎의 여러가지 조건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점점 시들어간다는 데 있다.
다른 직종에 비해 봉급이 상대적으로 적다든가,강의시간이 너무많다든가 하는 제도적 문제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 치더라도 그들의 제자인 학생들과 맞부닥치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그들로 하여금곧잘 회의와 좌절 속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간에 걷잡을 수 없이 틈이 벌어져 마침내 교수가 학생을 사랑하지 않게 되고,학생이 교수를 존경하지 않게 되면 그 학교가 존재가치마저 상실하게 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교수 없는 대학생은 존재할 수 없고,스승 없는 제자 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城南에 있는 한 대학에 봉직중인 동창생 교수가 최근 학생들에게 당한 횡액은 도무지 이 나라 대학교수와 학생간의 관계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서글픔마저 느끼게 한다.모범적으로 세상을 살아온 그 교수가 학생에게 폭행당한 경 위는 이렇다.학내의 여러가지 문제로 1년 이상 학생들의 소요가 계속돼온 이 학교에서는 학교내 교수.학생식당 운영자 선정관계로 지난 9월초부터 일부 학생들이 모든 식당의 출입구를 강제 봉쇄,감시하는 상태였다.9월21일 그 교수가 교수 식당을 가로막고 있는 건축자재를 치우려 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벌어지자 총학생회의 간부학생들이 기획실장 방으로 쫓아와 마침내 폭행사건으로 치닫게 됐다고 한다.
맞은편 자리에 앉으려는 학생들을 교수가 제지하자 한 학생이 『이 새끼 죽고 싶어』라고 소리치며 달려들어 목을 잡고 쓰러뜨린 후 위에서 누르고 주먹으로 여러차례 구타한 다음 탁자위에 있던 화분을 집어들고 내려칠 자세까지 취했으며,함 께 온 다른학생들도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며 이에 동조했다는 것이다.더욱 기가 찰 일은 이를 목격한 동료 교수들이 사실확인 서명을 첨부한 사건경위서를 만들어 학교당국에 제출하고 폭력학생의징계를 요청했으나 20여일이 지난 10월14일 열린 교무회의는찬성 7,반대 9표로 폭력학생 징계를 부결시켰다는 점이다.
이 대학의 학내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결의 실마리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거니와 제자가 교수를 폭행하기에까지 이른 사건의 배경을 짚어보자는 것이 아니다.예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君師父一體」라 하여 그 은혜를 따질 때 스 승을 아버지윗길에 올려놓았으며,속담에도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하여 제자에 있어서의 스승의 절대적 위치를 강조했다.
만약 폭행당한 스승과 폭행한 제자가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 한강의실에서 마주쳤을 때 과연 올바른 가르침과 배움이 이뤄질 수있겠는가를 생각해보면 교수와 학생이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자명해진다.
***理性的인간 양성필요 혹 그 사건은 우발적인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교수들에 대한 대학생들의 不信이 점점커져가기만 한다는 데 있다.일부 학생들이 교수에 대한 실력을 스스로 평가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도 그같은 불신에서 싹튼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학생들의 눈치만 살피는 교수들이 점점늘어나고 있다」는 어느 교수의 귀띔도 오늘날 캠퍼스位相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대학이 진정 理性的 인간을 양성하는곳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교수와 학생은 물론문교당국이나 학부모,사회 전체가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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