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보좌 이렇게 해도 되나/김현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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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영삼대통령 주재로 10일 오전 열린 안보장관 회의는 북한의 핵문제로 나라안이 뒤숭숭한 때여서 그 귀추가 주목됐다.
전군사력의 70%를 전진배치해둔 북한이 핵사찰과 관련하여 유엔안보리가 제재결의를 할 경우 전쟁을 감행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는가하면 이러한 도발가능성에 대한 클린턴 미 대통령의 응징경고가 나오는 상황이어서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들도 촉각을 세우고 이날 회의 결론을 지켜봤다.
청와대 공보당국은 회의 시작이후 김 대통령이 『클린턴 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종에 가까운 협의」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해 관심을 증폭시켰다.
김 대통령 역시 이러한 국민의 궁금증과 불안을 모를리 없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김 대통령이 『국민에게 알릴 것은 모두 알리라』는 지시를 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회의가 끝날 즈음 김 대통령은 『정부의 확고한 입장을 국민과 세계에 전달할 필요가 있다』며 발표를 서두르도록 정종욱 외교안보수석에게 다시 지시했다.
이날 회의는 북한의 심상치않은 움직임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입장을 정리하여 대책을 마련한다는 실질적 이유 못지 않은 요인들이 있었다.
안보에 불안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정확한 상황을 알려주고 우리의 대비태세도 튼튼하니 하등 동요할게 없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또 외신의 보도처럼 한반도가 불안하다고 할 경우 대한투자나 우리 상품에 대한 수입에 불안을 느낄 수도 있는 상대국과 구매선에 대해서도 유사한 어떤 메시지 전달을 기대한 측면도 있다. 회의가 끝나고서 1시간반이 넘도록 막상 발표를 맡은 정 수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기자실은 그를 찾느라 들끓었다.
그는 발표문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느라 늦었노라고 변명했다.
이미 대통령이 충실한 발표를 지시한 마당에 무슨 알맹이를 넣고 빼려했는지 모르나 대통령이 이미 자신에게 일임한 내용을 또다시 문안까지 작성해 보고했다는데도 문제가 있다.
국정운영 모든 부문에서 순발력있는 상황대처능력은 필수적이다. 하물며 국가안보에서 위기관리는 말할 나위가 없다. 분초가 늦어짐으로써 상황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유사시」를 생각하면 이렇게 대통령을 보좌해도 되는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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