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자서전 펴낸 아남그룹 김향수 명예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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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지만 정작 그 나이에 무엇인가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그 무엇이 사업이라고 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지금부터 25년전인 1968년 환갑이 다된 나이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 이 땅에 반도체의 씨앗을 뿌린 亞南그룹 金向洙 명예회장(82).
그가 팔순이 넘은 고령에도 불구,자신의 반도체 외길인생을 담은『작은 열쇠가 큰 문을 연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최근 출간해화제가 되고 있다.
『가발제품이 주요 수출품목일때 항공우주분야에 적용되던 반도체사업을 한다고 하니 주위사람은 물론 가족까지도 말리더군요.하지만 누군가가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빨리 시작해 토착화시켜야만 될분야라고 확신했습니다.』 극히 일부만이 반도체에 관한 기본지식을 갖고 있던 시절 그는 미국산업시찰중 아폴로우주계획하에 추진되던 반도체공업의 위력을 보고 결심,60평생 모은 재산을 다 털어 반도체사업에 착수했다고 한다.창업후 첫해인 지난 70년 21만달러에 불과했던 亞南의 수출액이 지난해엔 무려 17억7천만달러를 달성,단일품목으로는 수출 국내 1위를 차지했다.현재 亞南은 반도체 완성분야에서 세계시장의 40%를 점하고 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로서는 산업을 일으켜 일자리를 늘리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해 첨단기술을 발전시켜나가야만 합니다.
지금은 한눈 팔지말고 더욱 근검절약하며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주경야독하며 어렵게 성장한 그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던 시절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보람찬 직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일생의 목표였다고 한다.창업때부터지금까지 서울 화양동 회사 근처 유흥가가 밀집해 있는 평범한 집에 살고 있는 그는 옛날 버릇대로 신문 속에 끼어오는 광고지를 모아 메모지로 사용하고 선물포장지 하나라도 모아두었다가 긴요하게 쓸만큼 몸에 밴 근검생활을 하고 있다.그는 66세때인 지난76년 후두암에 걸려 대수술을 받 고도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비결은 다름아닌 일에 대한 집념이라고 말한다.
『미래의 주인이 될 젊은이들이 부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밀고나가는 굳은 신념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작은 열쇠가…』에서 그는 일제와 6.25등을겪으면서 숱하게 겪었던 고난과 역경을 집념으로 이겨낸 불굴의 삶을 진지하게 담고 있다.書道에도 일가를 이뤄 한국서도회장을 지내기도한 그는 지난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후 書畵에 정진하고있다.현재 亞南그룹은 펜실베이니아大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은 그의 장남 柱津씨(57)가 맡고있다.
〈李順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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