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을찾아서>14번째 시집 펴낸 시인 박재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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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 ◇… ◇… ◇… ◇… ◇… ◇… ◇… 『저만치 너는 떨어져서/조개를 캐고 있고/나는 바다돌을 뒤집어/꽃게를 잡는데 빠져 한창이다./얼마후 서로 바구니를 보면서/가난한 수확을 두고/벙긋이 웃고는 있지만,/ 결국 하나 공통된 것은/아무도 몰래 감춰 두었던/그 新鮮티 新鮮 한/울음 말고는 무엇이 더 있겠는가.』(「가난한 수확 끝에」中).슬퍼서 아름다운 시인 朴在森.삼천포 바닷가 지게꾼 아버지와 생선 도부장수 어머니 밑에서태어나 평생 가난과 외로움을 끼룩끼룩 울어온「삼천포 갈매기」 朴씨가 회갑을 맞아 시 집『허무에 갇혀』(시와시학사刊)를 펴냈다. …◇ …◇ …◇ …◇ …◇ …◇ …◇ …◇ 53년 피난수도 釜山에서 시단에 나온 이래 詩歷 40년에 14권째인 이 시집 『허무에 갇혀』에도 울음과 외로움,그리고 그것들이 나이에 맞게 영근 허무가 가득하다.
『재주도 없는 놈이 가당찮게 좋은 詩,좋은 詩하며 역사에 남을만한 詩를 쓰려했는데 영 그것은 안되고 허무함만 가득 써집디다.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들 하는데 애당초 재주가 없어 그런지 좋은 詩를 내놓는다는 꿈은 지금도 아 득히 있는 山이나 구름 같습니다.』 허무하다는 말이 너무 많이 나와 시집제목까지 『허무에 갇혀』로 정했다는 朴씨는 徐廷柱 이래 한국적정서를 가장 잘 살리고 있다는 평을 받는 시인.그는 밝은 햇살에도 왠지 눈물 흘리는 그 눈물의 의미를 가장 쉬운 우리의 말로 우리 가락에 실으며 눈물같은 삶을 살고 있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朴씨의 대표시 「울음이 타는 가을江」 앞부분이다.日帝 때 날품팔이하러 일본으로 간 부모 때문에朴씨는 東京에서 태어났다.고작 오두막 집 한채 값을 두른 부모를 따라 4세때 고향 삼천포로 돌아온 朴씨는 그곳에서 20세까지를 보냈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땅 한뙈기,나뭇배 한 척 없어 아버지는 부둣가로 지게지러 가고 어머니는 함박을 머리에 이고 생선을 팔러나갔다.거기서 그는 쓸쓸히 남겨져 늘상 빈집만 지키는 유년시절을 보냈다.심심하면 바닷가에 나가 죄없는 돌멩이 로 바다 물수제비나 뜨고 갈매기를 바라는 그 정서 그대로 시단에 나와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 朴씨의 시에는 까닭 모를 울음만 가득했다.많은 사람들이이러 저러한 이유로 실컷 울고 그 울음의 대가로 후련할만큼 무언가를 얻을 때에도 朴씨의 시는 까닭없이,한낱 바람도 없이 울고만 있다.그렇게 울도록 만들어 삶을 무한한 그 리움으로 이끌며 그 허허로운 의미를 깨닫게 하는게 朴씨의 시다.
『40여년 쓴 시가 5백편은 족히 되지만 지금까지 판 詩값으로 치면 그림 한폭 값도 안돼요.그리 가난하니까 시인으로 살아남았겠지요.하지만 다시 젊음으로 돌아가 청춘을 산다 해도 나는또 시를 쓸 것입니다.』 朴씨의 가난한 삶과 눈물의 시를 좋아하는 시인 50여명은 22일밤 혜화동 한 주점에 모여 『허무에갇혀』 출판기념회를 조촐하게 가졌다.
그 자리에서 徐廷柱씨는 후배 朴씨한테 『자네 시가 하도 좋아나와 靑馬(柳致環)가 서로 추천을 다투었제.오래오래 건강해 우리 시단의 좋은 본때가 되소』라고 축하의 말을 보냈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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