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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민자 의원들 한 부총리 유화론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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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북정책 보혁갈등/당무회의·국감서 잇단 문제제기/“대화상대”­“테러집단” 시각차 확인
최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두가지 사건이 여권내에서 벌어졌다.
하나는 국회 외무통일위의 통일원에 대한 2일 국정감사에서 한완상 부총리겸 통일원장관과 여당 의원인 이세기 전 통일원장관이 얼굴을 붉히며 고성의 설전을 벌인 일이다. 장관과 집권여당의 의원이 설전을 벌인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지만 그 내용이나 분위기가 더욱 심상치 않았다.
이 의원은 한 부총리가 18일 세미나에서 『북한을 고립시킬 필요가 없으며,또 고립시켜서도 안된다』고 한 발언을 문제삼았다. 이 의원은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공조체제에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는 시점에 이는 「김빼기」하는 발언』이라고 몰아붙이면서 한 부총리에게 『말을 아끼라』고 충고했다.
○세미나 발언 비난
이에 한 부총리 역시 『일부 언론에 발언이 거두절미돼 보도됐다. 이 의원께서 연설의 전문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맞받으면서 『사실은 고도의 전략적 발언』이라고 그점을 강조했다.
이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책결정자는 무릇 생각은 뜨거운 가슴으로,대책은 차가운 머리로 해야 하는데 부총리는 대책도 뜨거운 머리로 하는 것 같다』고 비꼬는 투로 말한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 의원이 부총리가 취임초기에 했던 발언까지 열거하자 한 부총리 역시 지지않겠다는듯 『정책입안이 되기전에 한 말을 문제삼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 인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한 표현으로 반박했다.
두사람의 얼굴이 붉은기를 더해가면서 어투도 거칠어지고 목소리도 높아만 갔다. 마침내 야당의 이부영의원이 위원장에게 「중재」를 요청했고,위원장이 『이제 그만하라』고 했지만 설전은 금방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감사가 끝난뒤 한 부총리가 이 의원에게 악수를 청했으나 이 의원은 『내가 여기 당신 강의들으러 왔소』라고 소리치며 흥분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듯 했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민자당 당무회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무회의 말미 토론시간에 원내로 민정계인 박정수위원이 역시 한 부총리의 발언을 문제삼아 『정부당국자가 정책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정계 원외 중진인 김수한위원 역시 『김일성체제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북한 핵문제 등 국가안보와 관련해 정부 핵심인사들이 국론을 혼란케 한다』며 집권당으로서의 조치를 촉구했다.
○일부 민주계 동조
이날 당무회의의 논의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은 김덕룡 정무1장관이 한 부총리를 따로 만나 회의 분위기를 설명했다는 당공식발표에도 잘 나타난다.
문제는 북한 핵만 아니라 민감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노출돼온 여권 내부의 엄청난 시각차다. 그리고 시각차에서 오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다.
이세기의원은 이인모 노인송환과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 중요한 북한 관련사건이 있을 때마다 한 부총리와 설전을 벌여왔다. 대개의 경우 같은 외무통일위 소속인 노재봉·안무혁·박정수의원 등 여당 의원들은 이 의원의 편을 들어왔다.
이들 의원과 부총리의 시각차는 북한을 보는 기본입장에서부터 엄청난 거리감이 있다. 의원들은 북한을 기본적으로 「비정상적 테러집단」으로 보기에 당근보다 채찍이 효과적인 대북정책임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입장이다. 반면 부총리는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보고 채찍보다 당근을 강조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당연히 주요정책에 대해 이견이 없을 수 없다.
○서로 “이상론자”
서로에 대해 보이지 않는 질시마저 깔려있다. 한 부총리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일부 냉소적인 냉전론자나 파시즘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소설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말한데 대해 의원들은 『남 얘기가 아니다』라며 불쾌해한다.
한 의원은 『한 부총리야말로 소설같은 생각을 가진 이상론자다. 북한과의 관계는 특히 현실을 존중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더 큰 문제는 여권내 보수주의자들의 불만과 질시가 한완상이라는 자연인 개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자당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보수적 의원들은 대통령의 실명제 실시발표와 정치개혁을 강조한 국회 국정연설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김정남 청와대 교문수석비서관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를 한다.
의원들은 특히 실명제 실시 명령중 가명·차명예금을 실명전환하지 않을 경우 원금을 20%씩 국고환수한다는 규정 등에 대해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인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발상』이라며 재야출신인 김 수석의 이데올로기적 성향까지 의심하기도 했다. 이인제 노동부장관이 취임초기 「노조의 경영참여 인정」 「무노동 부분임금」 등을 주장할 때도 비슷한 시선을 보냈다. 개혁와중인데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개혁 주역들의 일이기에 지금까지 함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소수지만 영향 커
이는 또한 민주계·민정계라는 계파간의 갈등과도 다르다. 민주계 중진인 김수한 당무위원이 민정계인 다른 의원들과 비슷하게 한 부총리의 발언을 비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계의 상당수도 이점에서는 민정계와 같은 보수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와 관련될 경우 진보적 성향으로 비난받는 사람들은 민주계 일부와 재야출신 등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소수가 새정부의 주요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에 다수인 보수주의자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런 일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불안감을 더 할 수 밖에 없다.
여권내의 이같은 보혁갈등이 어떤 절차와 논의과정을 거쳐 해소될 수 있을지 또는 더 증폭될지는 아직 속단키 어렵다는게 당안팎의 시각이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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