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19. 토요일의 횡재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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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방사선을 검출하는 비지오(BGO·왼쪽에서 셋째). 나머지는 비지오를 전자부품과 결합해 놓은 것이다.

나는 평생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발명도 했지만 남들에게 “내가 이런 것을 했소”라고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몇 개 안 된다. 그 중에서 PET와 PET에서 방사선을 감지하는 비지오(BGO·Bismuth Germanate)라는 핵 검출기의 성능을 찾아 낸 것을 가장 큰 실적으로 꼽는다.

 내가 이 두 가지를 발명하거나 찾아내지 못했다면 오늘날 PET는 사라졌거나 있는 둥 마는 둥 겨우 몇 대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지 모른다.내가 개발한 PET인 ‘조스 링’이 요즘 PET의 원형이 됐다면, 비지오 핵 검출기 성능의 재발견은 PET를 실용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현재 가동 중인 모든 PET는 원형(圓形)이며, 거기에는 비지오가 사용되고 있다. 요즘 들어 새로운 것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비지오는 20여 년 동안 독주하다시피 했다.

 내가 처음 개발한 것이나 워싱턴대에서 만든 PET에는 나트륨합성<NaI(Tl)> 검출기를 썼으나 방사선을 받아들이는 감도(感度) 가 낮은 게 치명적인 문제였다. 영상이 너무 흐릿한 것이었다. 인체를 촬영할 때 영상이 선명해야 정확하게 환부를 찾아내 수술 부위를 알 수 있다. 검출기의 감도는 거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나는 비지오 검출기의 성능을 남들이 쉬는 토요일에 실험실에서 우연한 기회에 밝혀냈다.

 1975년 나는 평소 잘 알던 하샤 (Harshaw)연구소의 패루키(Farukhi) 박사에게 비지오 검출기를 보내달라고 했다. 비지오는 원래 핵 물리학에서 쓰기 위해 새로 만들어진 핵 검출기였다. 이것이 PET에 적용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걸 PET에 써 보려고 패루키 박사한테 몇 개 보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비지오 핵 검출기의 값은 다이아몬드만큼이나 비쌌다. 1cm짜리 길이의 비지오 두 개를 겨우 받아 볼 수 있었다.

 앞서 전자연산회로를 만들었던 연구실 동료 만빌 싱 박사에게 비지오의 성능 평가를 맡겼다. 인도 출신인 그는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그 비지오는 말이야 성능이 썩 좋을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한번 테스트해봐”라고 지시했다. 당시 나는 PET를 개발한 직후여서 몰려드는 세미나·특강 요청을 소화하느라 너무 바빠 싱 박사한테 실험을 맡겼던 것이다.

 비지오 검출기는 투명한 유리와 같다. 방사선을 쪼이면 번쩍하고 빛이 난다. 그것이 비지오가 방사선을 감지했다는 신호다. 싱 박사는 비지오 검출기가 방사선을 받아들이는 시간과 방사선을 쬘 때의 산란 정도를 측정하느라 한동안 바쁘게 움직였다. 1~2주일 뒤 싱 박사가 결과를 내게 가져왔다.

 “비지오의 성능을 평가해보니까 교수님 말씀대로 별로인데요.”
  나는 평소 연구에 열중하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 그 뒤 비지오 검출기와 실험 장비는 연구실 한 구석에 그대로 방치되다시피 남아 있었다.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싱 박사도 미국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 연구소에 자리를 얻어 옮겼다. 결국 비지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실험 결과 데이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장희 <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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