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란」설 잠잠… 큰손은 속앓이/실명전환 D­2… 금융시장은 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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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 “실적저조” 비판일까 걱정/거액 증권계좌는 기한 넘길듯/비실명 도피처늘어 장기산업채권 거의 안팔려
실명제를 시행한지 두달이 지나갔다. 그동안 금융·증권 시장이 겉으로는 큰 요동을 치지 않았지만 그 대가로 돈은 뭉치로 풀려나갔고 그럼에도 돈은 잘돌지 않고 있다.
정부가 강조했던 대로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은 그간 금융기관에 나가 실명확인만 하면 됐지만,「소수의 큰돈 임자」들은 그간 차명이다,위장법인이다 하며 빠져나갈 길을 찾느라 안보이는 곳에서 치열한 숨바꼭질을 해왔다.
그 결과가 12일 최종 집계될 실명전환 실적으로 잡히겠지만 실명제의 본격적인 여파는 앞으로 두고두고 나타나지,정부나 여론 모두가 큰 신경을 쓰고 있는 「두달간의 전환 실적」으로 가늠될 성질이 아니다. 오는 12일의 실명 전환 시한을 이틀 앞둔 시중의 막바지 동향을 점검해 본다.
○…12일이 지난 뒤의 「금융대란」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어진 상태.
그렇다고 실명제가 금융시장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예금인출 때 국세청 통보」라는 처음의 방침이 워낙 사람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에 12일이 지나 돈을 빼내더라도 매우 조심해서 빼낼 것이라는 관측 때문.
정작 정부가 실명 전환시한을 앞두고 걱정하는 것은 「실명 전환 실적이 낮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까이고,지난주 중반부터 「방어 논리」를 미리 준비하느라 머리를 짜 낸 재무부는 마침내 「10만원 미만의 소액 가명 계좌를 감안하면 실명화율은 10%포인트 이상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대발견」을 하기도.
○끝까지 몸조심
○…일반 국민들의 민원을 덜어주기 위해 최근 재무부가 『상식적으로 본인임이 확인되면 예금·가명·아명도 실명으로 인정하라』는 공문을 각 금융기관에 보냈음에도 일부 금융기관의 몸조심은 여전해 막판까지도 실명확인 관계로 불편해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 연남동에 사는 한순희할머니(64)는 대한투신 명동지점에 41만원이 남아있는 계좌가 있어 주민등록증을 들고 찾으러 갔으나 그간 상연이라는 아명을 썼다하여 동장의 확인,이웃의 확인 등이 없으면 찾을 수 없다고 거부당하자 『동장도 확인못해 주겠다는데 과징금을 물란말이냐』며 본사에 하소연.
○추가 완화 기대
○…일부 상장기업 대주주들의 가·차명 보유주식의 실명전환 사례가 나타나고 있지만 「대어」겪인 재벌그룹 대주주 등은 아직 요지부동. 증권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추이로 볼 때 거액의 증권계좌는 마감일을 넘기더라도 실명전환하지 않고 계속 관망할 것 같으며 아주 소액인 계좌도 실명전환에 소극적』이라고 전망.
이는 거액계좌의 경우 실명전환 내용이 밝혀질 경우 쏟아질 여론의 화살이 금전적 손해보다 더 두렵고,또 앞으로 뭔가 「유리한 조치」가 더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소액계좌의 경우는 마감일을 넘기더라도 손해가 별로 크지 않다는 점에서 실명전환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
○…실명제 보완책이라하여 정부가 내놓은 장기산업채권은 이제까지 겨우 한일은행에서 5천만원짜리 5계좌 2억5천만원어치를 파는데 그쳐 예상대로 실적인 저조. 이달말까지 시한이 남아 있지만 실명전환 마감시한 이틀을 앞두고 있는데도 이렇게 실적이 나쁜 상황이라서 앞으로도 거의 팔리지 않을 전망.
금융계는 아무리 자금출처조사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실명을 대야하는 부담이 있는데다 실명제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법인이나 또다른 차명·사채시장에서의 덤핑 등 비실명자금이 빠져나가는 여러가지 방법이 「개발」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다지 팔리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비밀보장” 존중
○…홍재형 재무장관이 지난 7일 일선 금융기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발표했던 「원천징수자료의 국세청 제출 유보방침」은 발표전날 재무부안에서도 긴시간 뜨거운 논란을 거쳤다는 후문.
예금이자·주식배당에 대한 소득세를 원천징수한 기록은 고객의 금융자산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담고있어 실명제 실시후 수면위로 급부상한 「고객 비밀보장」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대해 실명제 긴급명령은 『세법상 제출의무가 있는 과세자료의 제출을 제외하고는 타인에게 금융거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있으나 세법은 「자료제출 협조의무」(국세기본법),「분리과세소득에 대해서는 제출의무배제」(소득세법) 등으로 보는 시각에 따라 정반대의 해석이 가능하게 돼있다.
특히 이같은 법적인 문제외에 원천징수자료가 「성실 납세여부에 대한 감시장치」,「금융자산노출 우려」라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갖고있어 이중 어느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것.
결국 실무를 맡고있는 국세청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자료를 받을 필요성은 있으나 실명제의 비밀보장 취지를 존중한다는 대국적인 견지에서 자료제출을 유보해도 좋다』고 수용함으로써 결말이 났다는 후문.<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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