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우리선생님>23.놀이연구회,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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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소풍을 간댔자 가슴설레며 들뜬 마음에 잠을 설치기는커녕 시큰둥하다 못해 냉담할 지경이던 국민학교 5학년생 딸이 올가을 소풍을 유난히 기다리는 모습에 李貞善씨(42.서울신사동)는 요즘몹시 흐뭇하다.
엊그제 학급회의에서 대전 EXPO를 관람할 이번 소풍(공식명칭은 현장학습)에 대해 상의했는데,백해무익한 음료수 대신 보리차를 얼려 가져가고 1회용 도시락은 사용하지 말 것과 차 안에서 어떤 놀이를 할것인지 등을 결정했다며 마냥 신 나는 딸.
『소풍이란 지루하게 차타고 가서 점심먹고 나면 가수.코미디언흉내 잘내는 얘들 구경좀 하다 돌아오는 것일 뿐』이라며『차라리아무데나 가서 친한 친구들끼리 마음대로 놀라고 해주면 훨씬 좋겠다』던 아들도 그런 동생이 꽤나 부러운 눈치 다.
『오빠,그뿐인줄 알아.우린 다음주부터 매주 일요일에 열명씩 선생님이랑 남산으로「진짜 소풍」갈거야.작년에 우리 선생님네 반이었던 친구가 그러는데,우리 선생님은 애들이랑 말뚝박기.고무줄놀이.낙엽줍기 같은것도 같이 하시고 재미있는 얘기 도 많이 해주셔서 정말 신난대.』 전교생이 함께 다녀오는 소풍으로는 어린이들이 충분히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즐기며 서로 친해지기 어렵기 때문에 딸의 담임은 매년 가을 일요일을 이용해 어린이들을 몇명씩 데리고 가까운 산이나 고궁엘 다녀온다는 이야기다. 지난 87년 생겨난「놀이연구회」의 교사들은 소풍이 반복되는일상에서 벗어나 즐겁고도 새로운 문화경험을 할 수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수많은 학교들이 거의 일정한 시기에 무슨 행사 치르듯 소풍을 다녀오려니까 장소도 마땅치않고 ,오가는 길에 밀리는 차속에서 보내야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아 다양한 활동을 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마음쓰기에 따라서는 좀더 기억에 남고 의미있는 소풍이 될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고유의 전래놀이를 중심으로 요즘 어린이들에게 권할만한 갖가지 놀이들을 발굴.창작해『신나는 놀이 즐거운 학교』『가슴펴고 어깨걸고』(우리교육 刊)등의 책을 통해 널리 소개하고 있는이들 전국의 국민학교 교사들은 연구회원과 자료회 원을 포함해 3백여명.
「놀이연구회」 회장을 맡고있는 李錄範교사(서울 계상국)의 경우도 소풍때마다 가급적 알까기 술래잡기.다방구.왕대포.돼지씨름.꼬리잡기.달팽이놀이.강강술래 등 신체접촉이 많은 전래놀이들을다양하게 즐기는 기회로 삼는다.오가는 차속에서도 노래 이어부르기.수수께끼.스무고개 등에 신바람이 나서 어린이들이 지루하거나차멀미할 새가 없도록 한다.
역시 놀이연구회 회원인 成在鉉교사(서울 증산국)도 언제나 소풍갈 장소를 미리 답사하고 돌아와 그 기회에 어린이들이 좀더 관심을 가지면 새로이 배우거나 느낄수 있는 내용을 재미있는 문답식 문제로 만들어 나눠주고 그 장소에 알맞은 활 동계획을 짠다. 「놀이=공부의 반대」라는 어린이들의 편견을 씻고자 애쓰는成교사는『소풍을 학급이나 학년 단위로 1년중 어느때든 다녀올 수 있도록 한다면,나아가 교실에서나마 어린이들이 1박2일 함께지내며 공동체의식을 키워주는 전래놀이들도 실컷 즐 길수 있다면잊을 수 없는 정말 즐거운 소풍이 될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金敬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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