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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정착에 모두 동참을(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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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실명전환을 나흘 앞두고 아직도 차명계좌를 중심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당국과 금융자산 보유자간의 눈치보기가 심하다. 마치 양자간의 힘겨루기 양상마저 보인다. 정부는 더 이상의 보완조치는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고,예금주들은 무슨 방도가 나올지 모르니 좀 기다려보자는 것이 금융기관 창구에서 잡히는 모습이다.
실명마감을 앞둔 현시점에서 모든 경제주체는 실명제를 미래지향적으로 정착시키는데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 그 이유는 실명제가 비록 경제논리에 기초해 출발한 것은 아니라 해도 이미 미칠만한 경제적 충격,즉 상당한 경제적 대가를 치렀으므로 이의 정착외에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단계에서 실명제의 당위성 등을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기에 정부나 민간주체들은 실명제가 거래관행으로 정착되는 것을 새로운 게임틀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는데 모두 동참해야 한다. 그러자면 아직도 분명치 않은 과거조사를 둘러싼 공방은 남은 기간중이라도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 자산보유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정부가 후퇴하기를 기다린다든가,그러한 기대를 정부가 너무 무시해버리는 팽팽한 대립관계는 실명마감이 끝난 이후에도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정부는 나름대로 자금이 금융기관에 유입되도록 모든 유인책을 강구해야 하고 피상적인 명분론에 사로잡힐 일이 아니다. 특히 실명제 후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보완조치로 제시한 장기채권제는 아직까지 실적이 매우 미미한 상태다. 이대로라면 정부가 생색만 내고 효과는 없는 조치가 될 공산이 크다. 장기채의 소화가 부진한 것은 그 조건이 너무 불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세형평을 가하고 상속·증여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라 하나 거액의 자금을 10년이나 연 1∼3%의 금리로 묶어두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지나친감이 있다.
실명제의 정착은 자금순환의 정상화로 판가름나는 것이지 실명화의 실적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다소 기대에 떨어지는 사태에도 정부는 차후의 거래관행 정착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차분한 정책대응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자금순환을 정상화시키자면 사채시장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상호신용금고나 신협의 활동영역을 확대해주고 이들부터 여수신금리를 자유화시켜 점차 모든 금융기관의 금리를 시장에서 결정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아직도 짐작키 어려운 것이 10월12일이후의 자금동향이다. 금융기관 이탈여부가 가장 관심거리다. 물론 비상시에 대비해 만반의 조치가 준비되어 있겠지만 최상의 조치는 돈이 자연스럽게 수익기회를 찾아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을 흘러다니게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적절한 수익기회의 보장이야말로 필수적이다. 실명제의 실시는 정치적 결단으로 했지만 이의 정착은 경제논리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깊이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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