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장수촌>2.에콰도르 빌카밤바-눌러앉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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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로하의 은행에서 換錢을 하다 만난 프랑스 청년 데농 앙드레(29)는 지난 겨울 관광차 이곳에 왔다가 단지 이곳을 떠나기 싫어 9개월째 그냥 눌러앉았다고 했다.
국민학교 교사였던 앙드레는 부모님에게 안부편지를 보냈을뿐 사직서도 보내지 않은채「지구상의 유일한 파라다이스」빌카밤바에 반해 호스텔 티에라에서 자취하며 살고 있다.
가져온 카메라도,끼고 있던 반지도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팔았다. 길게 자란 머리,그리고 머리만큼이나 긴 수염이 얼굴의절반을 덮은 앙드레는 히피도,집시도 아닌 기묘한 분위기를 갖고있었다. 그러나 한사코 사진찍기를 거부하는 앙드레에게는 한국의계룡산에서 仙術을 공부한다는 나이를 알수 없는 청년에게서 맡았던 그런 냄새가 났다.
호스텔 티에라에서는 여럿이 어울려 자는 하룻밤 숙박비로 밀빵과 커피 또는 녹차, 그리고 양배추.당근.감자.호박.양파.토마토같은 야채위주의 간단한 아침식사 한끼를 제공하고 15달러(1만2천원)를 받고 있었다.
이 호스텔에는 앙드레처럼 무작정 눌러앉거나 또는 건강이 나빠휴양차 온 경우등 저마다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오래 살고 싶은 친구」들 20여명이「가진 돈이 다 될때까지」를 기한으로 머무르고 있다.
이들이 가진 최대의 공동관심사는 돈벌이에 대한 정보.
관광객을 상대로 스스로 만든 공예품을 팔거나 인접한 국립공원구석구석을 안내하는 일 따위가 이들의 수입원이 된다.
재주가 좋은 친구는 잽싸게 현지인에게서 나귀를 빌려 관광객을태우기도 한다.산길을 걷는 것이 장수의 비결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나귀를 타지 않는다.
경사가 심한 산길이라 나귀를 타고 8시간정도를 올라가야 국립공원구역에 이른다.
물론 중간중간에 있는 통나무로 만든 산막에서 땀을 지우곤 한다. 해발 3천m의 이곳 국립공원을 둘러보는데는 보통 2박3일이 소요된다.
크고 작은 호수와 폭포가 곳곳에 숨어있는가 하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신비디움 히브라도를 비롯,카탈레자 막시마.카탈레자히브라다등 서양란의 원산지답게 군락을 이룬 자생지들도 펼쳐져 있다. 운좋게 자신의 언어권에서 온 관광객이라도 만나면 한달치생활비를 벌수 있다고 했다.
빌카밤바 유일한 행정청 관리인 후안 빌레나스씨(72)는 이들이 오히려 빌카밤바를 망치고 있다고 투덜댔다.
장수마을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노인들을 만나면 나이가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
이들은 실제 나이보다 10년 또는 20년씩을 높여 통역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대가로 노인들에게 약간의 돈을 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을에서 만난 아베르타노 로아翁은 자신의 나이가 1백16세라고 말했으나 기자가 확인한 결과 1894년생(99세)이었고 자신의 나이가 1백20세라고 밝힌 알폰소 헤다 노인의 경우 기록이 없어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1백세에서 많 아야 3~4세가 넘었을 뿐이라는게 빌레나스씨의 설명이다.
물론 기자도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한 대가로 약간의 돈을 줄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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