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강삼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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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삼재는 김영삼을 사석에서 "아버지"라고 불렀다. 김영삼은 강삼재를 "삼재야"라고 했다. 두 사람은 직선적이고 화끈한 성격이다. 승부의 고비에서 온전히 자기를 내던지는 스타일도 비슷하다. 강삼재는 매부리코에서 강함이 느껴지고 김영삼은 앙다물면 좌우가 처지는 입술에서 서늘함이 뿜어져 나온다.

둘은 1985년에 만났다. 강삼재가 서른세살에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나서다. 그는 김대중계였으나 김영삼 쪽으로 몸을 옮겼다. 그런 강삼재에게 김영삼은 아낌없이 주었다. 대중에 어필하고 조직과 돈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요직에 그를 앉혔다. 집권당의 강한 사무총장이란 뜻의 '강총'이 별명이었던 시절 김영삼은 청와대로 그를 1주일에 한번씩 불렀다. 강삼재는 김영삼의 뜻을 전파하는 메신저였다. 강삼재 변호인의 증언이 진실이라면 김영삼이 그에게 총선자금용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9백억원을 집어 준 것은 그 무렵이었다.

95년 10월 말께 청와대에서 나온 강총한테 기자가 물었다.

-전두환.노태우는 어떻게 되나.

"구속이다."

-전직 대통령을 꼭 그렇게 해야 하나.

"역사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강삼재는 당시 확신에 가득차 있었다. 김영삼도 그랬을 것이다.

9년이 지난 오늘, 강삼재와 김영삼은 거꾸로 '역사의 진실'을 질문받고 있다. 김영삼이 한손으로 전직 대통령의 더러운 짓을 단죄하면서 다른 손으론 강삼재의 지갑에 9백억원을 넣어줬느냐는 질문이다.

강삼재의 20대는 학생운동을 하던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그의 30대와 40대는 김영삼을 아버지로 모시면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김영삼의 성공이 나라의 성공이라고 믿었던 시대였다. 50대로 접어들어 그는 김영삼에 대한 의리와 역사의 진실, 자연인의 행복 사이를 오가며 방황하고 있다.

정계은퇴 선언도 해결책은 아니었다. 세상이 허락질 않았다. 강삼재는 이제 김영삼을 "아버지"가 아니라 "김영삼"이라고 불러야 할 때가 된 것 아닐까. 부자지간처럼 맺어진 사적 의리는 두 사람이 한때 믿었던 역사의 진실 앞에 포기돼야 하는 것 아닐까. 16일 법정에 설 강삼재의 입에서 "아무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실망스러운 말이 안 나왔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