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국면전환」 되려나”/활기찾은 민자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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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와대와 언로… 정국주도 기대/계파 알력도 스스럼없이 비판
민자당의원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21일(중견당직자)과 23일(소속의원 전원) 두차례에 걸친 청와대 만찬을 통해 가슴에 품고 있던 불만·소외감·정책비판을 김영삼대통령 앞에서 기탄없이 털어놓았다는 데서 오는 후련함 때문이다.
민자당의원들은 한발 더나아가 과거문책의 서릿발같은 사정한파에서 미래지향적이고 경제활력화에 주력하는 쪽으로 국면전환할 기대하는 모습이다.
○“미래지향” 관심
의원들은 23일 만찬에서 지역활동결과 피부로 느낀 경기침체의 심각성을 전달했으며 실명제에 대해서도 꾹 참아왔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또 당내 언로가 답답하게 막혀있고 계파간 갈등은 끈질기게 보존되고 있는 현실을 문제삼았다. 의원들은 당이 너무 허약하다고 지적하면서 당에 힘을 부여해줄 것을 요망하기도 했다.
1백12명이 참석한 이날 만찬에서 의원 17명이 김종필대표의 지명에 따라 말을 했다. 맨처음 발언권은 지난 3월 경기 광명시 보궐선거에서 당선한 정치학 교수출신의 손학규의원에게 돌아갔다.
그는 우선 그동안 자신에게 상당한 의식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상가나 예식장을 찾는 의원을 매우 시시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처럼 유권자에게 정성을 쏟는 의원이야말로 훌륭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따라서 의원이 할일은 무척 많다고 느끼나 힘은 별로 없는 것 같다』면서 『당이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이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는 의견은 계속 쏟아졌다. 허화평의원(경북 포항)은 『의총을 자주 열어 의원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야 당에 활력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강용식의원(전국구)은 『최근 당내 분위기상 삼삼오오 짝지어 말을 하지만 이 이야기들이 모여지면 한줄기를 이룬다. 실명제보완책 마련주장이 그 한 예인데 당은 실기하고 말았다』면서 『앞으로 어떤 문제에 대한 의견이 한줄기로 형성되면 당은 즉각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자주 지적되고 있는 언로의 막힘현상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강우혁의원(인천 남동)은 『당과 사회 전체에 언로가 트이지 않아 답답하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런 현상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용식의원도 『도덕성과 정통성이 높은 문민정부일수록 많은 견해를 듣고 건전한 비판을 수용해야 한다. 상도동시절과 다름없는 대통령이 되어주시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재산공개 뒤처리 과정에서 불거졌으나 고위당직자들이 애써 무시하고 있는 계파갈등에 대한 고발(?)도 있었다. 정필근의원(경남 진양)은 『대통령이 지난해 8월28일 민자당에는 게파가 없다고 선언했으나 실제로는 지금도 적자·서자·양자와 나처럼 「다리 밑에서 주어언 사람」(무소속에서 입당했음을 비유) 등으로 의원들이 분류되고 있다는 말이 있다』면서 『이런 분위기로는 당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원들은 역시 경제문제에 큰 관심을 표명했다. 유흥수의원(부산 남을)은 『지역구의 소상인들은 실명제 실시이후 경제사정이 더 어려워졌다고들 말한다. 실명제는 밑바닥층과 무관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이들이 더 곤란을 겪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강우혁의원은 『경제상황이 심각하다. 추위를 탄 나머지 투자하지 않는 실상을 잘 파악해 달라. 물흐르듯 가는 경제에 지나친 충격을 주는 조치는 더이상 안했으면 좋겠다』고 용기를 냈다.
○“당에 힘을 달라”
오래전부터 실명제실시를 주창해온 강경식의원(부산 동래갑)도 『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투자환경이 조성되지 않아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때문』이라며 『실명제로 세원이 노출돼 곤란을 겪는 영세상인들을 고려해주는 등 실명제보완책은 반드시 있어야하며 세제개혁도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밖에 많은 국민들이 개혁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상재의원(충남 공주)은 『여론조사의 지지층과 고통분담에 흔쾌히 동참하는 층은 다르다』면서 『앞으로는 「변화와 개혁,전진」이라는 국정연설 제목 가운데 전진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어야 동조·동참자를 늘릴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날 발언을 한 의원들은 대부분 개혁추진 과정에서 소외됐던 민정계였다.
○민정계가 목청
김 대통령은 그러나 『이야기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열심히 들었다. 이런 자리를 가능한한 자주 마련하겠다』 『민자당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당이 잘되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갖고 있다』며 여러 비판·건의를 포용·소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두번의 만찬에 대해 강재섭대변인은 『의원들이 말안하다가 말하게 된 것과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것은 엄청난 변화』라며 『형식이 실질을 창조하기도 하는만큼 이번 만찬을 계기로 당의 면모 일신은 물론 정국의 국면전환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이와관련,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대통령이 미래지향적인 개혁을 설계하는 차원에서 당내 불평·불만을 수렴하고 당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자리를 마련했다. 24일 대폭적인 실명제 보완책이 나왔듯 앞으로 개혁정책은 보다 건설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며 국면전환의 가능성을 시사했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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