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편싸움… 문제중학생/진학시킨 한 교사의 정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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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박봉 쪼개 운동구 사 복싱지도/대회에 입상영광… 3명 고교에/“졸업장이나 탈까 했는데…” 학부모 눈물
17일 오후 서울 망우1동의 동원중학교(교장 박상천) 체육실.
『걸핏하면 집나가기 일쑤여서 제대로 졸업장이나 받을까 걱정했는데 고교진학까지 결정됐다니 이렇게 고마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체육교사 정진경씨(29)는 갑작스레 찾아든 학부모들의 눈물글썽한 감사인사에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어쩔줄을 몰랐다.
『그저 교사로서 할일을 했을 뿐인데….』
정씨가 수줍게 말한 「그저 할일」이란 그러나 박봉을 쪼개 글러브와 샌드백을 구입,복싱으로 문제아들을 조련해 참된 사람으로 키워내는 눈물과 땀의 결정체였다.
장안중→서울체고시절 아마복서로 활약했던 정씨가 첫 직장 동원중에 임한 것은 지난해 3월.
학생부에서 근무하며 문제학생들에겐 매 한대보다 칭찬 열마디가 값지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으며 복싱지도를 결심했다.
편싸움을 벌여 쫓겨나다시피 전학 온 이석민(3년) 등 학교에선 너무나 유명한 문제아 4명과 함께 겨울훈련을 시작했다.
복싱장이 없어 날씨가 좋은날엔 운동장에서,궂은날은 복도에서 푸트웍을 가르치고 미트를 받아주며 기본기를 다졌고,밤엔 10평 남짓한 체육실에서 전기 스토브 2대로 몸을 녹이며 각오를 다졌다.
가끔 인근 흥학체육관 등 링시설이 갖춰진 번듯한 곳으로 훈련나가기 위해선 유니폼이 필요해 55여만원의 20만∼30만원을 쪼개야했다.
10만원 하는 샌드백 2개는 매달수 있었지만 최소 5백만원이상 드는 링시설은 아예 꿈도 못꿨다.
그래도 매일 아침 망우리 공동묘지를 돌아오는 약 9㎞의 로드웍을 이겨낸 탓인지 말썽장이 이석민군이 지난 16일 폐막된 제14회 회장배대회에서 코크급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올해만 모두 5개의 상장을 챙기는 기염을 토했다.
『상장은 커녕 졸업장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그동안 죄인처럼 가슴 죄어왔다』며 어머니 용영숙씨(41)는 눈물을 삼켰다.
또 아예 자퇴서까지 써놓고 다닐 정도이던 골칫거리 차수노(3년)가 첫 출전한 서울시장배대회(6월)에서 3위에 입상,실내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어머니에게 난생 처음 상장을 안기는 효도를 했다.
『제자들이 순간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복싱팀을 떠날때,또 힘 한번 쓰도록 고기를 사먹이고 싶어도 돈이 없어 불고기집 앞을 그냥 지나쳐야할 때는 혼자 체육실 문을 걸어 잠그고 펑펑 울었습니다.』
입상보다도 가출·편싸움 등의 못된 버릇을 고치는게 더 기쁘다는 정씨의 복싱부 19명중 12명은 정학 등의 징계경력이 있는 문제아지만 강창운·이석민·차수노(이상 광운전공),서종민(서울체고) 등 3년생 모두가 고교진학이 결정됐다.<유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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