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노조 기득권 깨진 인천항 101년 만에 하역근로자 공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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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이 근대적 항구로 모습을 갖춘 이후 101년 만에 처음으로 500명의 하역 근로자를 공개 채용한다.

인천항만 노조가 근로자의 채용에서부터 업무 배정까지 독점했던 클로즈드 숍(closed shop) 제도가 깨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회사가 근로자를 공개 채용하지 않고 노조가 근로자의 채용 독점권을 갖다 보니 돈을 받고 고용하는 비리가 자주 생겼다. 채용된 근로자는 사실상 정년이 보장돼 새 인력이 항만 하역 근로자로 취직하기가 어려웠다.

반면 기존 근로자의 임금은 높아 인천항은 중국과 같은 경쟁국의 항만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들었다. 이에 따라 노조와 정부가 항운노조의 노무 공급 독점권을 없애기로 합의했다. 기존 근로자를 대상으로 해선 명예퇴직을 실시한 뒤 젊은 인력을 새로 채용하기로 했다.

정부와 하역업체, 인천항만노조가 공동으로 구성한 인천항 인력관리위원회는 12일 하역 일용직 근로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일당 8만원을 받게 되며 2년 이상 근무하면 연봉 4200만원을 받는 하역업체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인천항 인력관리위원회는 조만간 300명가량의 일용직 근로자를 추가 모집할 계획이다.

인력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노조의 기득권이 무너지자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첫 공개 채용=인천항이 하역 인력을 공개로 뽑기로 한 것은 지난달 노사정 간에 체결한 '인천항 인력공급체제 개편 협상' 때문이다. 이 협상에 따라 10월부터 인천항운노조 소속의 하역 근로자들은 17개 하역 업체 및 9개 해사 업체의 상용 근로자로 전환된다.

항운노조는 이에 맞춰 이달 1일부터 10일까지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전체 1741명의 조합원 중 834명(48%)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인력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노조원들이 개별 업체의 상용 근로자로 신분이 바뀌면 근로조건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대규모로 퇴직을 신청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퇴직금에다 정부가 주는 생계안정지원금이 추가로 지원돼 퇴직자 1인당 1억5000만~2억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인천=정기환 기자

◆항운노조=19세기 말 부산.인천.원산 등 개항장의 부두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자유노조가 모태다.현재 전국항운노조연맹 산하에는 16개 항만 등 36개 사업장별로 항운노조가 결성돼 있다. 노조원은 3만5000여 명이다. 1967년 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의 추진 수단으로 직업안정법을 개정하면서 노무공급업을 하도록 인정해 최근까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클로즈드 숍 체제를 유지했다. 하역업체는 항만에서 짐을 내리거나 실을 때마다 항운노조에 인력을 요청하는 등 항운노조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클로즈드 숍(closed shop)=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만 고용하고, 조합을 탈퇴하거나 제명된 사람은 해고하는 제도. 근로자의 채용 권한도 노조가 갖는다. 유니언 숍(union shop)과 비슷하나 유니언 숍은 근로자의 채용 권한을 회사가 갖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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