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페레스 이스라엘외무의 신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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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결국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장이 마주 앉았다.다른 수가 없기 때문이다.두 사람간의 합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 연쇄반응을 촉발시켜 근 1백년동안에 걸친「聖스러운 땅의 전쟁」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현재로선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됐는지를 따지기 보다는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가늠해 보는것이 더욱 중요한 때다.과거 철천지 원수였던 두 세력은 지금 인간의 본성은 변화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실천에 옮기고있다.이들은 단지 외교적 차원의 전술적 이해만을 노리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을 종식하는것은 이스라엘 국가 수립의 동기가 됐던 유대인 대학살 문제가 마무리 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의 희생물이 됐다고 믿는 유대인들이 갖는 공포는 아랍세계의정치지도자들이나 팔레스타인人들이 이스라엘을 파괴 하려는 야망을공식적이고 실질적으로 포기하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美國은 당초 워싱턴에서 진행된 중동평화협상과정을 통해 요르단江 西岸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PLO를 대신할 정치적 실체를 마련해 주기를 기대했다.그러나 22개월에 걸친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 대표들은 전혀 PLO로부터 독 립적인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은 이츠하크 라빈 총리에 밀려 평화협상에서 전혀 발언권을 갖지 못하던 페레스 외무장관에게 기회를 제공했고 페레스장관은 워싱턴 평화협상을 대신할 PLO와의 직접 비밀협상을 오슬로에서 시작했다.그는 아라파트가 지난 79년 캠프 데이비드협정 이후 계속 제안상태에 있던 잠정적인 자치안을 받아들일 의향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라빈 총리와 미국정부를 설득할 수 있었다. 걸프전 당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지지함으로써 심각한 재정난과 정치적 어려움에 빠진 아라파트는 페레스 장관이드리워준 생명줄을 잡았다.
「가자-예리코 우선자치안」은 PLO에 이스라엘軍이 추가로 철수하기 위해 인티파다(민중봉기)를 종식시키고 질서를 세워야 하는 의무를 지우고 있다.PLO는 또 이스라엘의 물리적 통제아래있는동안 두 지역에서 정상적인 정당조직으로 탈바꿈 해야 한다.
「가자-예리코 우선 자치안」은 이스라엘에 대학살과 다섯 차례에 걸친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악몽을 잊게 해주는 기회가 되는것과 똑같은 정도로 팔레스타인人들이 꿈꿔온 1947년 이전과 같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 을 의미한다.아라파트가 이 자치안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와는 다른 목표와 사고방식을 갖도록 강제하고 있다. 페레스장관은 냉전 종식이 중동지역에 가져다준 환경변화 속에서 아라파트가 이스라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념 아래 위기에 처한 아라파트를 구해줬다.이는 과거 팔레스타인과는 어떤 협상도 하지 않아왔으며 어떤 정치적 실체도 인정하지 않 았던 이스라엘의 정책도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2월 페레스 장관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당시 그는 내게 아랍과 이스라엘은 정치적 극단주의를 비롯,중동지역의 사막화등 이 지역 모든 나라들이 공동으로 직면하고 있는 위협들에 대처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新中東 질서를 역설한 바 있다.그는『우리는 걸프전을 통해 미사일을 비롯한 非재래식 무기들이 한나라가 독자적인 안보능력을 갖춘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음을보았다.아랍-이스라엘간 분쟁에도 지역방위체제와 정치적인 접근이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하던 시기는 막 오슬로에서 비밀협상을 진행하기 시작한 때이며,그는 나는 물론 라빈 총리에게도 비밀협상이 진행중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었다.한때 페레스는 마키아벨리적인협상가라고 불리기도 했다.그러나 앞으로 무슨 일 이 일어나든지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반드시 깨져야만 하는 터부를 깨뜨린 사람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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