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해명안되면 용퇴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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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는 다시 한번 일단 국민들을 분노와 허탈감에 빠뜨리고 있다. 시가와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공시지가·기준시가·과세표준 등을 기준으로 한 1인당 평균 재산이 14억4천여만원에 이르고,같은 기준으로 30억원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사람도 1백명을 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도 말했듯 「공직자가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매도되어선 안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그 축재과정이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처음으로 재산이 공개된 법조계 공직자들 가운데는 변호사시절에 번 재산이라고 해명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점은 어느정도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변호사 활동을 했고,정당한 수임료를 받았으며,정확히 세금을 냈다면 불과 2∼3년의 변호사 생활동안 그토록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게 과연 가능한 일이겠는가.
또 공직자들 가운데는 수없이 부동산을 사고 판 사람들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이 그 과정에서 세금을 정확히 냈는지도 궁금한 일이나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그 정도가 문제다. 지난 10년은 투기의 시대라 할 정도로 사회 전체가 투기나 재테크에 들떠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공직에 있는 신분으로서 전문적인 투기꾼 뺨치게 투기에 나선 것이라면 법적으론 문제가 없더라도 도덕적인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재산형성과정 뿐 아니라 보유형태를 보아도 가관이라 할 경우가 스두룩하다. 상속이나 소득이 전혀 없는 부인이 남편의 몇배나 되는 재산을 보유한 경우도 많고,자녀가 아버지보다 훨씬 많은 재산을 지닌 경우도 있다. 과연 이들이 정상적인 상속이나 증여절차를 밟았겠는가.
재산공개와 등록에 따른 실사과정이 앞으로 남아 있다. 현재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는 명백한 불법적인 축재,이를테면 공직자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이권에 개입해 부당한 재산을 축적한 것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와 상응한 조치가 있어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문제는 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도덕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는 공직자들이다.
우리는 이들 공직자들이 우선 스스로 납득할만한 해명이 있기를 바란다. 현재의 지위와 직책으로 보아 도저히 그냥 이대로 넘어가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해명을 통해 사회가 납득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응분의 태도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전반적으로 공직자는 그 직업적 특성상 일반 직종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지만 공직 가운데는 특히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고 있는 분야가 있다. 사회안정을 위해선 그런 분야부터 상세한 해명이나 경우에 따라선 용퇴의 입장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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