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일보의 「남북한 차별」/전택원 북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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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24일로 한중수교 1주년을 맞은뒤 요즘 북경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어딘가 씁쓰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처음 발단은 소위 중국최고의 권위지라는 인민일보가 김영삼대통령의 회견기사를 실으면서 보인 「세련된」 편집기술 때문이었다. 이 신문의 24일자 6면의 왼쪽에서 시작되는 머리기사는 평양발로 「김일성주석,주평양 중국대사 접견」이란 부재에다 「조선과 중국의 우의는 만고에 푸르리라」는 활자를 굵은 고딕체로 처리했다.
이날쯤이면 한중수교 관련기사가 나오리라는 기대를 가졌던 북경의 한인들이 언뜻 엉뚱한 느낌을 받은 이 시가에 한눈을 주면서 의중의 기사를 찾아헤매다 우연히 바로 그 옆에 가느다란 활자로 처리된 대통령의 회견기사가 실려있는 것을 보게 된 경우가 자기 혼자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일국의 대통령 회견에 사진조차 실리지 않은 것은 물론 프로토콜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채 일개(?) 주서울 인민일보 특파원이 단독으로 회견을 다룬 것도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사태는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평소 8면을 발행하는 인민일보가 이날은 4면을 증면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규적인 지면이 아닌 한국기업체의 광고를 한자리에 담은 것이었다. 한면에 수만달러씩 지불한 광고지는 한중수교 1주년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다투어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 광고지가 북경시내에 가판되는 것은 찾아 볼 수 없었으며 일부 정기구독자에게도 상당수가 빠진 채 배달된 것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중국신문들은 「재주도 부리지 않고」 뭉칫돈을 챙긴 반면 한국측은 「봉」이 된 것이다. 그러고도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과 사업가들은 중국 고위층에 줄을 대기위해 거금을 싸들고 오고 있으며 중국 최고실력자 등소평의 「따님」 한분이 곧 한국을 방문하는데 벌써부터 4만달러를 초청자측에서 제공했다는 소문이 북경시에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북경의 한국특파원들은 지난 7월부터 중국고위층과의 공동인터뷰를 신청해 놓았었다. 그러나 답변은 아주 신속하게 돌아왔다. 『불행(안된다)』이라는 그야말로 「불행」한 한 마디뿐이었다.
양국관계의 발전을 마다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서로 좋은 이웃이 되려면 작은 기만이나 분위기를 해치는 짓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수교 1주년은 다시 「냉정한 머리」로 대국을 정리해보는 기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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