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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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낯선 땅,낯선 사람(49) 꺼어먼 수염이더부룩한 장씨의 얼굴을 은례는 쳐다보았다.머리는 언제 감았는지뒤통수가 까치집을 짓고 있다.홍씨가 말했다.
『장서방 배 잘 건너고,뒤터에 심은 밀 보리도 그만하면 한 소출 나겠더구만.봄에는 안에서 부지런을 떨어서 산뽕 따다가 누에도 치지 않았어.그러면 되지,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은고.』 사공 장씨가 허어 허어 웃는다.
『네 그러문요.훈장님댁이시라 공자 말씀만 하시네요.뱃사공 장가,등 따습고 배 부르고 오뉴월 늘어진 개팔자지요.』 홍씨도 소리없이 따라 웃는다.
『그게 다 언 발에 오줌누기지요.몸만 어수선했지 그런다고 뭐일이 되는 일이 있는 줄 아세요.』 『팥이 풀어져도 솥 안에 있지 어디로 갈까.귀모토각이란 말도 몰라요?』 『무슨 소린데요?』 아버지 치규가 늘 하는 말이다.별 이야기를 뱃사공한테 다하고 있다 생각하며 은례는 강 위쪽의 산을 바라본다.
『거북이한테 털이 있을리 없고,토끼에게 뿔이 있겠느냐 그런 소리지.세상에 순리라는 게 있지 억지로 되는 일도 없다는 얘길하고 싶어 그러우.』 배는 느리게 강을 건너 강가에 와 닿았다.강가에 뱃줄을 묶으며 장씨가 말했다.
『헤엄 잘 치는 놈 물에 빠져 죽고 나무 잘 올라가는 놈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더니.모르지요.그 꼴이나 안 나면 명보전 잘 했다 싶으니까요.요새는.』 사람들 마음이 점점들 흉해지는구나.그런 생각을 하며 홍씨는 강가로 올라섰다.약이 든 보퉁이를들고 이번에는 은례가 앞서 걸었다.딸의 뒷모습에 홍씨의 애잔한눈길이 가 멎는다.꽃 본 나비요 물 본 기러기라는 말도 있던데.젊은 것들이 어찌 세월을 잘못 만나서 이렇게 떨어져 살아야 하는지. 앞서 걷던 은례가 몸을 돌렸다.
『엄마.나 혼자 그냥 생각해 보는 건데… 이러면 안 될까?』『뭘?』 『그냥 해본 생각인데,일본에 가보면 안될까?』 『일본에 가다니… 너 그게 무슨 소리냐?』 홍씨의 눈이 커진다.
『어떻게 된 일인지,이렇게 답답한데 차라리 나라도 건너가 보면 안 될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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