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못미친 “경기활성화”(김영삼정부 6개월: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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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전양면” 개혁과 맞물려 위축/각종 규제완화,자율바탕 마련/설비투자 부진·물가불안… 세제·재정개편이 열쇠
『신경제요? 우리 같은 주부들이 피부로 느낄 만한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경기가 전보다 나아진 것 같지도 않고….』
과천 정부종합청사 민원안내실에서 만난 40대의 한 아주머니는 「문민정부의 신경제계획으로 주변에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피부에 와닿게
금융실명제에 대해 그녀는 『송금이나 무통장 입금때마다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조금 번거롭긴 해도 실명제 실시로 부정하게 돈버는 풍토가 정말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나타내기도 했다.
신경제 6개월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한 아주머니의 이같은 평가는 매우 함축적이다. 경기회복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이되 초대형 개혁조치인 실명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평가는 애당초 신경제팀이 겨냥했던 것과는 거리가 먼듯하다.
신정부는 출범전후 경기 활성화를 겨냥한 「신경제 1백일계획」과 「신경제 5개년계획」을 마련,경제회복에 온 힘을 쏟았는데 여기에 대한 평점이 제대로 나오지않고 있는 것이다.
신경제의 뼈대를 만든 청와대와 경제기획원도 최근의 경기를 여전히 「회복국면」으로 보고 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빠지고 있다.
두차례에 걸친 공금리 인하와 총 9조7천4백억원에 달하는 설비자금 공급을 동원한 결과가 신통치 않은 점에 유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침체상태를 면치못하고 있는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걸림돌이다. 금융실명제 실시로 이같은 투자관망세가 언젬 풀릴지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4.9%에서 잡겠다던 올해 소비자물가도 이달 중순까지 이미 4.4%나 올랐다. 전반적인 경기부진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작년 동기(4.5%)와 거의 같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성신 연세대 교수 『정부는 신경제 1백일 계획을 통해 쓸 수 있는 부양책은 다 썼으나 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경기부양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력한 사정활동과 개혁조치를 펴면서 경제가 잘 되겠느냐는 반문이다.
○지원효과 반감
그는 특히 금융실명제 실시에 대해 뭔가 순서가 바뀐 느낌이라고 했다.
1백일 계획을 내걸고 경기활성화에 주력하던 「성장우선정책」이 어느날 갑자기 실명제라는 개혁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같고 이것이 그동안 회복을 위해 쏟아 부었던 각종 지원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가 안고 왔던 경제현안중 일부라도 털어버리고 신경제를 가동시켰으며 한결 낫지 않겠느냐는 아쉬움도 일부 나오고 있다. 금리자유화를 앞당기고 억눌러 왔던 공공요금을 현실화시켜 물가안정기틀을 다진다든지,공무원 처우개선 등을 통해 사정한파로 오그라든 공직사회의 사기를 높일 필요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신경제의 산업정책과 관련한 민간경제의 자율성보장도 여전히 평가가 엇갈린다. 특히 「업종전문화 정책」을 비롯한 각종 대기업 정책에 아직 불확실성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새 정부 출범후 경제발전에 기여한 정책노력도 적지않다. 우선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던 각종규제를 완화하는데 범정부적인 행정력을 기울인 점은 평가할 만하다. 금융자율화를 바탕으로한 금융개혁안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간 것도 주목의 대상이다.
정치적으로 은행장을 「지명」해 관치금융의 폐해를 낳게했던 은행장선임제도를 자율화한 조치도 금융인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불안감 씻어야
따라서 앞으로 신경제에 거는 기대는 역시 재정·세제개혁과 금리자유화를 골자로 하는 금융개혁의 성공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실명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도 세제개편은 시급하며,재정개혁을 통해 나라예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마련이 중요한 과제다.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의 견인역을 맡고 있는 기업인들의 불안감을 씻어주고 기업활동에 예측가능성을 심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금리안정을 바탕으로한 정책운용과 물가불안 해소책 마련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여기에다 실명제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각종제도와 관행의 정비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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