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남편 꼴찌남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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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아내의 대학동창 남편에 대해서는 직접 만나보지 않았어도 대충 그 사람이 무얼 하고 어떤 성격인지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그 사람의 외모나 말씨까지도 훤히 다 알고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한 친구의 남편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의사선생님인데 가정에 충실한 미 남자란다. 주말이면 늘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외식을 하며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상당히 잘 산다고 한다.
『의사가 뭐 그렇게 좋은 직업인 줄 알아? 내 친구녀석도 내과의사인데 직업 중에서 똥오줌 받들어 모셔야 하는 직업은 의사밖에 없을 거라고 그러더라.』괜히 심술부려보지만 그 친구의 남편은 똥오줌과는 거리가 먼 성형외과 의사다.
다른 한 친구의 남편은 건축가인데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 중견간부로 활약하다 최근 독립해 건축사무소를 낸 어엿한 사장님이다. 게다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올 때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10층 아파트를 계단으로 헐레벌떡 뛰어올라간 전설을 남긴 분이다.
그뿐인가. 주말이면 아내가 1주일동안 수고했다고 손수 장을 보아다 가족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준다고 하는데 음식솜 씨 마저 일품이란다.
『그 사람들 왜 그렇게 멋있대. 누구 기죽일 일 있나보지』
괜히 느물거려 보기도 하고 『그 양반들 꽁생원이지? 마누라만 끼고 도는 걸 보면 친구도 없나보지』하며 트집도 잡아보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내가 뭐 당신보고 꼭 그 사람들처럼 해 달랬어요? 그냥 그런 멋있는 남편도 있다는 얘기지….』슬쩍슬쩍 이런 얘기를 들먹여 나를 「빵점 남편」으로 전락시켜버리는 아내의 짓궂은 저의(?)가 얄밉다. 그러나 간혹 내가 그 사람들에 비해 너무 열등한 남편이 아닌 가 자문해 볼 때도 있다.
한편으론 서로간의 경쟁심을 자극시키려는 아내의 고도의 심리전술일거라고 애써 생각하며 『요즘 세상에 그렇게까지 하는 남편이 어디 있어. 나 정도면 됐지』라고 얄팍한 자위도 해본다.
언젠가는 한번, 날을 잡아 그 멋있다는 아내 친구의 남편들을 모두 초청해 진상을 규명해봐야겠다. 그리고 진실이 아니라면 동지로 규합해야겠다. 『조금만 멋있습시다. 마누라들 심리전술에 우리만 코피 터지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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