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탈레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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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탈레반은 '구도자' '학생'을 의미한다. 여기서 '학생'이란 이슬람식 기숙학교인 '마드리사'에서 이슬람의 원리주의적 이상을 배우는 자들이란 뜻이다. 마드리사 출신들은 이념과 조직.연대의식이 매우 강하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 활동하는 듯하지만 금방 큰 조직을 결성해내는 조직력도 탁월하다.

이런 '학생'들이 정치적.군사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모하마드 오마르가 1994년 파키스탄의 칸다하르에서 탈레반들을 중심으로 반소(反蘇)투쟁조직을 결성하면서부터다. 이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친소정권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여 96년 랍바니 대통령 정권을 카불에서 몰아낸 뒤 아프가니스탄의 95%를 장악하며 실질적인 지배세력이 됐다.

하지만 탈레반은 국제적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다. 특히 2001년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고 오사마 빈 라덴의 연루가 확인된 후 탈레반은 강한 반미(反美)주의를 바탕에 깐 국제 테러집단이란 이미지와 연관돼 있다.

실제로 워싱턴의 일부 연구가들과 관료들은 9.11 이후 반미주의적 정권이나 이념가들을 '탈레반'이란 단어로 덧씌우기도 한다. 특히 한국의 노무현 정부 등장 후 워싱턴 일각에서 대북정책 등에서 이견을 보여온 한국 외교안보라인의 주도세력을 탈레반으로 호칭한다는 지적들도 여러차례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의 핵심적 활동가들인 천정배.신기남씨 등을 정치권 주변에서 탈레반이라고 부른 지는 꽤 됐다. 그런데 최근에 일부 외교공무원들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주도적 세력들을 탈레반이라고 호칭했다 해서 야단법석이다.

이들의 대미관(對美觀)이 전통적인 것과 다르고, 이들이 현재의 한국 정치.관료세계에서 판바꾸기를 시도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의견이 다를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역사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이슬람 원리주의 및 테러리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탈레반'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국은 테러리즘을 배격하며 자유.민주.자본주의를 신봉하는 국가다. 이런 나라의 이미지가 탈레반과 결합되는 것은 한국민 전체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된다. 자칫 한국사회 전체에 불필요한 오해만 불러올 뿐이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