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친노-비노 중매役 유인태 의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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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08면

신인섭 기자

대통합민주신당 유인태 의원은 피곤해 보였다. 아침잠 많기로 소문난 그가 요즘 매일 새벽 5시40분에 일어난다고 했다.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그는 최근 신당의 비노(非盧) 그룹과 열린우리당 내의 친노(親盧) 그룹 사이에서 통합의 가교 역할을 해 왔다. 7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그를 인터뷰했다.

“마이너리그 경선 생겨봤자 누가 그거 중계나 하겠나”

-신당 이름에 ‘대통합’이 들어 있는데 반쪽짜리 통합이란 지적이 있습니다.

“열린우리당과는 이제 합당하면 되는 거고…. 어차피 민주당에 남은 분들과 통합은 쉽지 않게 됐잖아요.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참여정부를 부정하고 차별화하지 않으면 대선 필패라고 보는 건데. 고집이 센 양반이니까…. 그런데 억지로 차별화가 되겠냐 말이죠. 또 노무현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예, 우리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라고 하겠냐고. 그럼 대분열이 오고, 그거야말로 필패죠.”

-민주당이 합류 안 하면 범여권 경선이 두 개의 리그로 나뉘게 되는데.

“미국 프로야구나 골프에는 1부, 2부 리그가 있다죠. 그런데 마이너리그를 누가 중계하고 쳐다보기나 하나.”

-신당이 ‘도로 열린우리당’이란 비판이 많습니다.

“그건 말이 안 되죠.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잖아요. 범여권에서 국회의원만 놓고 보면 열린우리당 출신이 90%가 넘게 당선이 된 건데 이걸 어떻게 바꾸란 말입니까. 손학규씨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데리고 나온 것도 아니고….”

-남북 정상회담이 대선 구도에 영향을 줄까요.

“정상회담에서 뭔가 성과가 나온다면 그간 대북 강경노선을 걸었던 정당에선 조금은 불리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죠.”
인터뷰가 길어지자 유 의원은 피곤한 듯 연방 눈가를 눌렀다. 대화 도중 졸지나 않을까 걱정됐다. 정무수석 시절 대통령이 주재하는 청와대 수석ㆍ보좌관 회의에서도 이따금 조는 모습을 보였던 그다. 당시 얘기를 꺼내자 “나만 졸았던 게 아니라 문희상 비서실장, 나중에 인사수석이 된 정찬용 인사보좌관도 종종 졸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정 보좌관이 졸 때는 앞자리의 반기문 외교보좌관이 슬쩍 가려줘서 안 들켰는데 내 옆의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은 그런 걸 할 줄 몰라서 나만 걸렸다”며 껄껄 웃었다. 화제를 다시 신당 얘기로 돌렸다.

-신당이 대선을 위한 1회용 정당이란 비판이 나오는데.

“1회용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대선을 치르기 위한 것은 맞지. 지금까지 대선 때면 늘 정계개편이 있었잖아요. 이를 없애려면 현재의 지역대립 정치구도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있어야죠.”

-대선에 질 경우 신당이 그대로 유지될까요.

“내년 초에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어요. 그러면 전당대회에서 밀린 세력이 총선에서 공천받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 딴 살림을 차리는 상황은 생길 수도 있겠죠. 그건 한나라당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그런데 그렇게 나가서 성공한 예가 없잖아요.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탈 세력이 만든 민국당의 면면이 좀 화려했습니까. 그렇게 거물 중진이 상당히 포진했는데도 쫄딱 망했거든.”

-일부 친노 대선 후보들이 ‘신당에 먼저 합류한 후보와 아직 합류하지 않은 후보가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경쟁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는데요.

“그런 점이 약간은 있는 것 같아요. 신당이 창당될 때 열린우리당도 그냥 함께했으면 좋았을 텐데. 합당이 늦어져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거죠.”
경선 규칙 얘기가 나오자 그의 눈이 커졌다. 바둑ㆍ골프ㆍ카드 등 각종 잡기에 능한 그는 “크든 작든 내기를 할 때는 누구에게나 룰이 공평해야 한다”는 걸 철칙으로 삼고 있다. 몇 년 전 노 대통령이 “유인태 수석과 골프를 치면 나한테도 절대 ‘OK(기브)’ 안 준다”고 했을 정도다. 평소 90타대를 친다는 정계 원로 한 명이 그와 같이 골프를 치자 성적이 110타로 뚝 떨어졌다는 일화도 있다.

-범여권 내에 맘에 드는 후보는 있으세요.

“지금 뭐, 궁하니까 누구라도 좀 떠줬으면 좋겠는데….”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광주 정신은 1980년에 머물 수 없다’고 한 걸 두고 범여권 내에 말이 많던데요.

“손 전 지사가 당시 유학을 가서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에 없었다는 ‘현장부재론’도 나오더구먼요. 그런데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그때 광주에 있었나. 다들 취직하고 사법시험을 봤던 사람들인데. 그리고 3김시대에 한나라당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봐요. 다만 한나라당을 개혁하기 위해 뭘 했느냐는 건 따져물어야지. 요즘 원희룡ㆍ고진화 의원을 보면 당내에서 욕을 먹으면서도 자기 할 소리를 하잖아요. 그런데 손 전 지사가 과거에 그랬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친동생 유인택씨가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제작한 영화 ‘화려한 휴가’가 요즘 인기인데요. 이 영화가 이번 대선에서 범여권에 도움이 될 거란 주장도 일부 있고.

“저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요. 다만 우리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 보게 되면 그들의 의식 형성에 조금 영향은 주지 않을까 보여집니다. 한나라당에선 신경이 좀 쓰일 수는 있겠죠.”

-유시민 의원의 대선 출마 문제를 놓고도 설왕설래가 있더군요.

“출마야 자기 자유죠. 지지율 1%도 안 되면서 출마하겠다는 사람도 수두룩한데…. 유 의원이 마뜩지 않은 사람은 다른 후보 지지하면 되고.”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의 공과(功過)는 뭔가요.

“검찰ㆍ국정원 같은 기관을 정치적으로 독립시킨 업적은 인정해야죠. 정경유착이 없어지고 투명성이 높아진 측면도 있고. 다만 대통령으로서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언행은 좀 있었던 것 같고. 인사도 출범 초기엔 전력을 불문하고 인재를 폭넓게 등용하려 했는데 탄핵 이후 노 대통령이 계속 고립되다 보니 확실히 코드 인사 쪽으로 좁혀진 측면이 있죠.”

-열린우리당의 실패 원인은 뭡니까.

“과거 3김시대의 제왕적 총재에 대한 반작용이긴 했지만 당 의장을 그렇게 자주 바꿔댔으니…. 예를 들면 너무 엄한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누가 조금 졸기만 해도 몽둥이로 두들겨패니까 ‘선생님 쫓아내고 우리끼리 자율학습하자’고 한 거지. 그런데 자율학습을 시켜놓으니까 애들이 전부 잡담이나 해대고 엉망이 된 거죠.”

-요즘 범여권은 친노ㆍ비노ㆍ반노로 나뉘는 것 같은데 본인은 어디에 포함된다고 보세요.

“언론에서 만날 친노라고 쓰던데요. 그런데 친노들이 다 없어지고 나면 내가 친노가 될까, 서열로 따지면 나는 친노 중에 한참 아래인데. (웃음) 다만 참여정부의 성과를 인정하는 측면에선 확실한 친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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