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엔평화군 주도권 포기/2선에서 군사·재정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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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WP지 보도/추가경비는 일·독에 분담구상
【워싱턴 로이터=연합】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유엔평화유지군(PKF) 주도권을 유엔에 돌려주고 미국은 2선으로 물러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모색중이라고 워싱턴포스트지가 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백악관 고위안보 보좌관들이 「대통령명령(PDD)13」으로 명명된 관련정책 보고서 최종안을 마련,사실상 클린턴 대통령의 서명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고 전하고 『이 방안이 미국의 대외군사 정책상의 일대 전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강조했다.
「PDD13」은 유엔으로 하여금 명실상부한 PKF 주도권을 갖도록 하며 미국은 2선에서 상황에 따라 PKF활동을 「정치·군사 및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이라고 이 신문이 덧붙였다.
미국은 이와 관련해 PKF 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이에 필요한 추가경비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입을 적극 모색중인 일본·독일에 분담시킨다는 구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안은 그러나 미국이 작전주도권을 포기하더라도 유엔 깃발아래 분쟁지역에 파견된 미군을 독자적으로 철수시킬 수 있으며 정보 보고도 유엔 명령계통을 거치지 않는 단일채널로 받도록 하고 있다.
포스트는 이같은 방안이 정책변화에 따른 미 행정부내 마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일본·독일이 미국의 구상에 순순히 따를지 의문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유엔 법무국은 내부보고서를 통해 미군 주도의 유엔군이 지난달 소말리아 군벌인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의 군사거점을 공습한데 대해 신랄히 비난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5일 보도했다.
◎미 군사정책 변화의 의미/“경제이익 우선” 클린전정책 실행/에산줄이는 대신 「기동전략」 강화
빌 클린턴 미 행정부의 유엔평화유지군(PKF) 미국주도 정책포기,2선후퇴 방안은 냉전체제 종식에 따른 새로운 대외 군사·외교정책의 구체화로 평가된다.
이는 클린턴행정부 출범때부터 누누이 강조돼온 재정적자에 따른 군비예산 감축의 실천으로 미국의 대외군사정책의 일대 전환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각국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이같은 조치는 이른바 「클린턴독트린」의 단계적 수순으로 볼 수 있다. 즉,『대외군사·외교문제에 제한적으로 개입한다』는 「클린턴독트린」에 따른 것이다.
이와관련,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최근 한 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힘있는 국가의 역할을 떠맡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지금은 냉전후시대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해 「클린턴독트린」을 뒷받침했다.
피터 타노프 국무차관 역시 『클린턴독트린은 경제이익 우선에 근거하고 있다』며 『미국은 대외군사·외교정책에 한계를 설정,상황에 따라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하자면 「성공적인 대외군사·외교정책은 건강한 경제에서 나온다」는 클린턴 대통령의 한결같은 방침을 적극 실행한다는 것이다.
미국 군사정책 변화는 이번 조치 이전에도 여러군데서 나타났다.
▲해외주둔 미군기지 대폭 감축 ▲95년 지하 핵실험 계획취소 ▲스타워스계획 백지화 등 「체중감량」으로 세계를 긴장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에서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비용과 위험,특히 경제적 손실을 무릅쓰고 전세계적 행동을 감당할 수 없으며 단지 「조정자」역할만을 하겠다는 점을 반영해주고 있다.
소련이 붕괴돼 냉전시대가 종식되고 경제가 휘청거리는 마당에 미국은 더 이상 수퍼파워로서의 지위를 잃었으며 국제적 안정은 세계 각국의 「협조」로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맥락이다.
결국 미국의 이번 조치는 ▲미소 군사강국시대의 붕괴와 경제강국시대의 도래에 따른 미국의 역할 축소 ▲국익을 대외적인 군사우위가 아닌 경제우위에서 찾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향후 미 행정부의 대외군사정책은 냉전체제 아래서 옛 방침을 포기하고 대신 신속한 기동성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즉,전쟁발발시 장거리이동에 따른 예산낭비를 줄이는 대신 신속배치 능력을 키워,이른바 「기동전략」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이는 『적의 개념이 불분명해진 상황에서 국방예산을 절감하면서 어떻게 그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에서 나온 것으로 클린턴 대통령과 레스 애스핀 국방장관은 과거 소련에 대응하기 위한 고정적 군대주둔 개념에서 어느 곳에서나 위기상황에 수시로 대응할 수 있는 군사력의 기동성을 강조해왔다. 기동성과 더불어 과거 소련만을 상대로 한 일정방향에서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의 서로 다른 전쟁환경에 대처하는 유연성을 갖추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구 유고 산악지대나 소말리아 같은 특수환경에서 전투를 해야 할 입장인 것이다. 때문에 항모와 조기공중경보기 혹은 폭격기·전함위의 헬기 등 통합군작전과 신세대무기의 활용방안이 모색될 것이고 유엔군으로서의 2선후퇴에 따른 우방들의 최대 활용안이 앞으로의 대외군사전략으로 대두될 전망이다.
또 신아시아 안보체제 같은 한 지역의 다자간 안보협력을 활성화시켜 분쟁억제는 물론 자국군비 절감효과를 보겠다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클린턴독트린」이 향후 미국 대외정책의 기조가 될 전망이다.<정선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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