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보고 재무부서류가 단서/국제그룹 위헌결정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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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그룹 해체직전 청와대 긴급지시로 작성/89년 5공비리 대검수사과정서 드러나
국제그룹 전 사주 양정모씨측이 85년의 국제그룹 해체가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을 받아내기까지는 그룹해체가 주거래은행과 기업의 정상적인 경제행위가 아닌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몇가지 정부의 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지금까지 위헌혐의는 다분하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구증에 실패했던 다른 사건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대목이다.
국제그룹측 김평우변호사도 『공권력 남용사건일수록 수사당국의 자료를 구하려면 보안사에 가보라,또 보안사에 문의하면 수사자료를 다 폐기했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자료자체를 구하기 힘든게 보통』이라며 『다른 사건들도 국제해체처럼 검찰 조사기록이나 정책 입안자료 등이 조금이나마 노출됐다면 많은 불법사실이 밝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그룹 해체가 새로운 전기를 잡게 된 것은 88년 6월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정감사가 부활되면서부터. 이 무렵 옛 국제직원 10여명은 그룹 복권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당시 국회는 관련기관에 부실기업 정리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고 재무부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지만 은행감독원과 제일은행은 국제그룹에 대한 자료를 제출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돼야 한다는 은행측의 분석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2월5일 제일은행과 국제가 그룹 자구계획을 함께 마련하는 등 정상적인 복원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국제그룹 복권대책위원회의 김상준전무는 『뒤집어 말하면 국제그룹의 해체는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위층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주도된 것을 의미했다』고 말했다.
좀 더 결정적인 자료는 국정감사가 끝난뒤 대검 중앙수사부가 5공비리 마무리 조사를 펼치는 과정에서 나왔다.
당시 대검 중수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던 재무부와 제일은행 관계자들은 『우리가 주도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이 과정에서 몇가지 내부문건도 함께 제출됐는데 이 가운데는 89년 2월말 재무부가 그룹해체에 앞서 청와대에 보고한 「국제계열 현황과 대책」이란 문건도 포함돼 있었다.
재무부 관계자들은 『85년 2월6일 청와대의 긴급지시로 남서울호텔에서 합숙하면서 작성한 서류』라고 조사과정에서 털어놓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메모까지 들어있는 이 문건에서 재무부는 ▲은행관리의 개시와 ▲계열기업의 처분권을 주거래은행에 위임하고 ▲주력기업에 계열기업을 끼워넣어 처분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다시말해 2월5일 주거래은행과 국제측이 자구노력 등 그룹 정상화방안을 매듭지을 무렵 청와대와 재무부가 국제의 공중분해를 결정하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 것이다.
2월12일에는 재무부가 제시한 방안 가운데 연합철강을 권철현씨 대신 동국제강으로 넘기로독 인수업체가 변경됐다.
여기에는 또 사회적 물의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거래은행 및 은행연합회로 하여금 공동발표를 하도록하는 별도의 언론대책까지 들어있었다.
이 문건은 국회 문서검증반에도 제출됐으며 국제그룹 복권추진위원회는 이를 입수하자마자 곧바로 89년 2월27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결정문을 보면 위헌확인 과정에서 헌재는 국제측이 제시한 자료를 거의 그대로 인정했음을 알수있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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