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입법의 경제적 대가/최철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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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급하게 만들어진 법 때문에 골탕을 먹는 건 흔히 중산층 이하의 국민들이다. 국민경제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전혀 엉뚱한 사람들에게 황당할 정도의 피해를 주는 경우가 빚어진다. 처음에는 법취지도 괜찮고 명분고 그럴듯해 보여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럴수가」하며 화를 낸다. 그러나 이미 때가 지난 다음이다. 지금 법을 고치자고 손을 들어보았자 오해만 잔뜩사고 법을 심의 통과시켰던 국회나 행정부의 체통도 구겨져서 말발이 서지 않게 된다.
○경제영향 예측 무신경
토지초과이득세 파동을 둘러싸고 정부나 여·야당이 바로 그런 입장에 처해 있다. 투기와 전혀 관계없이 노는 땅을 가지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게 된 선의의 농민이나 도시민들도 울상이다. 억울함을 호소해 보았자 동정은 커녕 부동산 투기꾼으로 몰려 손가락질받기 십상이니 냉가슴만 앓게되는 속사정들이 있다. 잘못하다간 반개혁적 인사로 몰리기 쉬운 것이다.
90년 2월의 임시국회는 지방세법이 개정된지 두달도 채 못돼 똑같은 내용을 재개정한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당시 여야 의원들은 영업용 부속토지에 적용되는 재산세 누진세율을 한꺼번에 최고 17배나 올린 자신들의 입법행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이를 허겁지겁 손질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의원들은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민간 기업이건 국영이업이건 재산세를 대폭 올려야 투기가 곧 잠들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있는자」 편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 법이 통과된후 문제의 세금은 과세되기도 전에 각종 제품과 서비스에 전가돼 물가마저 들썩거리게 되었다. 임시국회는 불과 두달만에 이 세율을 대폭 내림으로써 의원들의 값비싼 경제학습이 가까스로 끝났다.
입법활동에 있어서 경제관련법의 2차,3차적 효과를 어떻게 예측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어느 법이 진정으로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안정을 깨지 않고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느냐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원과 하원이 서로 견제하는 미 의회는 행정부 및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관련 법안을 다루는 소위원회 청문회 등에 출석해 의견을 제출할 기회를 넓혀줌으로써 왕성한 정보 수집활동을 한다. 우리와 비슷한 의원발의제도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회는 전문보좌 조직의 협력을 얻어 법률 내용의 질저하를 막는다.
○개혁대세만 쫓는 경향
이제 새삼스럽게 토지공개념 관련 3개 법이 충분한 심의를 거친것이냐를 따진다고 해서 토초세가 지닌 오늘의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는 「어떤 상황」을 조성하는 여론의 대세와 이 대세에 몰리는 경제논리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면서 법의 제정·개정에 임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어려움의 극복 없이는 경제적 충격을 막을 길이 없다. 땅 투기를 막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대책 가운데 하나가 토초세 부과다. 더구나 개혁적 상황에서 이에 관련된 법안 제정이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간과했다. 과세및 징세권을 행사하는 국세청 당국이 미실현이득에 세금을 물리는 토초세 문제로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임을 국회심의 당시에 예고했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이 세제를 피하기 위해 전문 투기꾼들은 공시지가 결정과정에서 상당부분 빠져나갔다. 기실은 세제가 복잡할수록 빠질 구멍은 허다하다. 빈터에 임시 건물을 지어 과세를 면한 사람도 많았다. 몇년 후에는 다 헐어내야 할 건물들이다. 이런 건축 행위를 놓고 정부는 경기가 괜찮다고까지 했다. 국회와 행정부가 처음부터 가장 합리적인 투기억제 수단으로 주장돼온 종합토지세제 강화방안을 배척한 것을 덜 개혁적이라는 비난을 이겨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91년 노벨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스는 법적용에 있어서 그것이 미치는 경제적 비용과 국민의 편익을 면밀히 분석하는 이론을 개발한 사람이다. 이를테면 오진에 따른 보상비용을 인상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혜택이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적 약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우리의 경우 입법이 졸속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앞에서 예를 든 지방세법 처럼 여야가 정치협상으로 승강이를 벌이다 막판에 무더기로 법안을 처리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의원들이 제정한 공직자 윤리법의 중대한 결함은 금융실명법과의 상충관계를 전혀 짚어보지 않았다는데 있다. 행정부 관련부서는 이에 대해 상의조차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해당법에 따라 관련위원회도 각 금융기관에 대해 공직자와 그 가족들의 예금자료를 내놓도록 요구할 것이다. 예금비밀 보호를 위해 제정한 실명법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상황과 이론 접목해야
신경제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권도 나타난 현상만을 좇지 말고 근원을 다스려야 그 흐름이 매끄러워 진다. 국회가 저소득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주택 임대차 기간을 2년 이상으로 늘린 탓에 오히려 전세값이 폭등했던 것이 바로 3년전의 일이다. 법에 의한 경제실험은 너무 많은 대가를 요구한다. 토지 관련 세법의 경우 우리는 본질적으로 과표 현실화를 적극 찬성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과세를 기피하려는 감정적 갈등을 안고 있다. 그런 이중적 구조에 대한 분석도 입법자들이 법에 반영하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룸살롱 등에 대한 세금을 20배 인상하겠다는 대통령의 언급이 법으로 어떻게 처리될지 주목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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