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와 민주주의|문창극(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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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민주주의 생활화에 가장 큰 저해요인으로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가 정치엘리트들의 특권의식, 권위의식일 것이다.
미국이 그나마 민주주의 국가로서 명색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줄기차게 이러한 특권의식을 배제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다.
며칠 전 미국 연방수사국 (FBI)의 윌리엄 세션스 국장이 10년이라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 했다.
그가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파면 당한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공용차를 부인이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 있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때 수누누 비서실장이 물러난 이유중의하나도 비서실장의 공용차로 개인 업무를 보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 2월 백악관에 들어오자마자 소위 관용차 이용에 대한 규칙을 새로 만들어 발표했다.
고위공직자들의 업무 편의와 신변안전을 위해 제공하는 차량이 특권으로 전락해 국민과 거리감만 조성한다는 지적과 함께 모든 백악관 직원은 자신의 차로 직접 출퇴근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함께 리언 파네타 연방예산국장은 모든 관용차를 50% 줄이도록 행정부에 지시했다.
미 의회는 86년 계속 늘어만가는 관용차를 통제하기 위해 법률로 이를 제한해 놓았다.
즉 대통령·부통령 및 가족들은 샤시간 관용차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백악관에는 6명의 참모와 각 부처로부터 온 산명의 고위직에 대해서만 운전수 딸린 관용차를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를 다 없애고 단지 안보업무관련자 3명에게만 관용차 출퇴근을 허용했다.
이러한 개혁은 행정부에도 파급되어 현재 미국에서 운전수가 출퇴근시키는 고위직은 16개 부처의 장관과 USTR대표 및 예산국장, 그리고 유일하게 국무부의 부장관이다. 이밖에 핵무기를 통제하는 전략사령관, 육해공군 장관 등 몇 개의 국방관련 고위직뿐이다. 미 의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원 1백명과 하원 4백명 모두가 자가운전으로 국회를 드나들고 있다.
비록 돈이 있다해도 국회의원이 운전사 딸린 자가용의 뒷좌석에서 거드름 피우는 사진이 지역구에 나왔다하면 그는 더 이상 재선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지 상·하원의장, 그리고 원내총무에게는 의회에서 차량과 운전사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 운전사를 고용할 경우 1년에 2만5천달러의 봉급을 주어야 하는데 이 돈이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나간다고 할 때 이를 보고 좋아할 국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경우 공무원자가운전 지침에 따라 1급 이하는 자가운전을 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요즈음 와서는 다시 1급들까지도 각종 명목으로 관용차 출퇴근을 하고 있다.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당연히 유급 운전수를 채용해 주는 나라도 우리 나라 뿐일 것이다.
고위공직자들이나 정치엘리트들이 「특권의식」은 포기하지 않고 말로만 국민을 대변한다고 할 때 국민은 허탈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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