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과거청산 시금석/일,종군위안부 조사단 한국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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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엔상임국 겨냥한 파해국들 무마용인듯/“적당히 얼버무려 면죄부 받을 속셈”비판도
일본 정부가 해방이후 처음으로 국내에서 한국인 종군위안부(정신대)에 대한 진상조사활동을 시작해 과거의 과오를 청산하려는 의지를 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정부차원의 공식조사단을 국내에 파견,26일부터 3일간 서울 용산구 한강로 태평양전쟁유족회(공동대표 양순임) 사무실에서 태평양 전쟁기간중 강제징집되어 일본군 위안부로 종사한 생존자들의 증언을 듣게된다.
일본측의 이번 증언 청취는 『한국인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하지 않았다』는 지금까지의 주장을 번복,군위안부들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하고 벌이는 첫 공식 활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본 조사단은 내각 외정심의실 심의관 등 사무관급 이상 정부관리 7명과 일본 인권보호위원회 간부,변호사 등 「실무급」 9명으로 구성돼 있어 구체적 피해내용을 조사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번 증언청취가 일본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앞두고 국내외 여론을 무마하려는 일시적 제스처라는 시각과 증언청취후 진상규명→공식 사과→피해배상으로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전단계조치라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종군위안부 존재 자체조차 부인해온 일본정부가 공식 조사단까지 파견하게된 데는 이 문제를 둘러싼 국내외 여론 악화라는 배경이 깔려있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90년 한국에서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실상이 폭로되고 이들의 피해구제를 위한 태평양전쟁 유족회가 발족하면서 국제적 관심사로 발전했다. 한국에 이어 중국에서도 일본인들이 중국여인들을 위안부로 끌고 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미국의 뉴욕 타임스 등 국제언론도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의 극치로 군위안부 문제를 크게 보도했었다.
유엔본부 앞에서는 일본의 잔인하고 비인도적 군위안부 제도가 아시아여성을 학대한 대표적 사례라며 과거의 반성과 청산없는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아시아단체들의 시위도 잇따랐다.
태평양 전쟁으로 피해를 본 아시아 10개국들도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일본을 비판했고 지난 6월 비엔나 유엔인권대회에서는 피해국 민간단체들에 의해 일재의 만행이 큰 이슈로 제기되기도 했다.
또 최근 민자당의 위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비자민계인 신생당·사회당이 노골적으로 『주변국들에 대한 전후 처리가 잘못됐다』고 선언하는 등 국가내 여론조차 나쁘게 돌아가고 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이같은 안팎의 여론에 밀려 어떤 형태로든 군위안부 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번 증언청취는 같은 상황에서 문제해결의 첫 단계로 태평양유족회가 지난 90년부터 요구해온 증언청취를 받아들였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이번 증언 청취가 사죄나 배상이라는 실질적 마무리로 이어질지는 아직 의문이다. 무엇보다 일본정부의 사상 첫 증언청취가 문제해결을 위한 것인지,국제적 비판에 일시적 눈가림을 하기 위한 것인지 의도가 아직은 분명치 않다.
많은 증거와 자료,그리고 일본인들의 자성과 반성,혹은 양심선언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이에대해 아직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기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이 국내외의 비난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위해 외교적 제스처 차원에서 조사단을 파견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또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등 일부 국내 단체들이 『이번 증언 청취가 자칫 과거 만행 책임을 적당히 얼버무리며 일본정부에 면죄부를 줄수 있다』고 증언청취를 반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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