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산업현장에 발암요소 "수두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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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당신의 직업이 암을 부를 수도 있다. 발암물질을 대량으로 다루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물론 위험정도가 높지만 겉보기엔 무관하게 보이는 직업도 간접적으로 암의 위험이 높아지기도 한다.
카톨릭의대 산업의학센터 박정일 교수는 『코크스·석유·타르·니켈·비소·크롬 등 산업현장에서 흔히 취급하는 물질들이 직·간접적으로 여러 암의 원인이 된다』고 밝혔다. 이런 직업성 암은 금방 나타나는게 아니고 발암성 물질을 상당 기간에 걸쳐 마시거나 피부에 닿거나 한 다음 겉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직업성이란 사실을 인식하기 쉽지 않아 문제가 더욱 크다고 지적했다.

<농민은 농약조심>
직업이 유발하는 암의 범위는 엄청나게 넓어 공장근무자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농약 등 각종 화학물질을 많이 쓰는 농부도 폐암·간암·방광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게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연세대의대 암센터 김주항 교수(혈액종양내과)는 『광산 근무자, 특히 우라늄 광산 근무자와 석면취급자, 아마로 된 선박용 동아줄을 만드는 사람들은 발암성 먼지로 인해 폐암에 잘 걸리는 등 암 문제에서 직업을 떼어놓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발암물질을 직접 취급하지 않는 경우도 『공장매연이나 자동차 배기가스에 많이 노출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 속에 들어있는 벤조피렌류나 탄화수소류 등 발암물질이 몸에 들어와 각종 암의 원인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발암물질로 알려진 물질을 피하는 것이 암 예방의 기본이지만 직업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완전치 피하기는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남원 교수는 『직업성 암의 원인은 너무도 다양해 간단히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단순히 발암물질로 알려진 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에 대해 규제하고 작업자가 기준 이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고 다 예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산업위생전문가회의·국립산업보건연구원은 산업체에서 취급하는 물질 중 암을 일으키는 물질에 대해 작업장내 허용농도를 규정, 취급에 주의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그 허용농도라는 것이 전혀 암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이 아니다. 예를 들어 「10년 근무자의 1%정도만 걸리는 농도」식으로 비용과 건강을 함께 고려해 허용기준치가 설정되기 때문에 문제는 간단치 않다는 설명이다.

<증상 늦어 무관심>
뿐만 아니라 발암물질 취급자가 아니면서 직업상 환경 속의 발암물질을 일반인보다 더 많이 들여 마셔야 하는 직업인도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직업별 종사자들이 각종 암에 걸리는 비율을 조사하고 위험도가 높을 경우 원인이 무엇인지 역으로 찾아 주의를 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예로 석탄광원뿐 아니라 교통경찰·운전사 등은 폐암에 걸리는 정도가 평균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먼지나 배기가스 등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는 특정 암에 걸린 사람들의 직업을 조사해 직업별로 그 암에 걸릴 확률을 산출하기도 한다. 방광암의 경우 선원과 철도기관사 등이 평균치보다 8∼9배정도 더 많이 걸리고 있으며 석탄광원, 유리 공, 석유·콜타르·고무를 다루는 사람들은 4∼5배가 높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특이한 것은 경호원들이 4배정도 더 잘 걸리고 있어 오염물질을 많이 들여 마시는 것뿐 아니라 다른 다양한 직업성 발암요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성균관대약대 이병무 교수는 『미국에서 담배나 음식을 태울 때 생기는 발암물질인 벤조에이피렌의 실내농도를 조사했더니 맥주홀·식당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실내 경기장과 심지어 관광용 오두막에서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는 흡연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식당과 관광용 오두막의 경우 음식 조리, 장작 때는 난로 등도 원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심지어 흡연을 허용하는 여객기의 실내공기도 상당히 농도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흡연을 허용하고 조리 등으로 연기가 많이 나는데도 환기가 시원찮은 실내공간은 한마디로「발암 물질로 가득 찬 밀폐탱크」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흡연이 상승작용>
이런 곳을 일시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매일같이 상당시간을 거기에서 보내는 근무자에게는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본인이 담배를 피우는 경우 상승작용으로 커다란 위험에 놓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서울대약대 정진호 교수는 『미국에서는「암 위험도 0」을 위해 암 원인을 제거·회피하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우리 나라도 암과 관련이 높은 직장에서 적극적인 원인 회피·제거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채인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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