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백혈병환자 살리자”/서울경찰청 1기동대의 미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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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경들 5개월째 헌혈/40여명 격무속 차례정해 피공급/병세호전­주위사람들과 대화도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관,전·의경들이 한 백혈병환자를 살리기 위해 다섯달째 릴레이헌혈을 하고있다.
서울경찰청 기동단 제1기동대(대장 오세찬총경) 소속 대원 40여명은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앓아누운 정용규씨(5·변호사사무장·서울 구로구 개봉동153)에게 지난3월부터 사랑의 헌혈을 해오고 있다.
3월15일 김창규상경(21)을 시작으로 열흘에 한번꼴로 이어진 이들의 릴레이헌혈로 처음 고맙다는 말조차 할수 없이 중환이던 정씨는 아직 훼체어에 의지하곤 있지만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다.
방범활동·시위진압·기초생활 질서캠페인 등 밀려드는 격무에 시달리는 기동대원들의 사랑의 헌혈운동은 지난 2월말 「대장님」 앞으로 날아든 편지 한통으로 시작되었다. 정씨의 동생 봉규씨(48)는 이 편지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은 형이 헌혈을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정씨는 1년전 오랜 감기와 축농증 증세로 병원을 찾은 결과 급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후 조카(지훈·22 지난 2월 연세대 원주캠퍼스 수학과졸) 친구들이 헌혈을 맡아 생명을 유지하며 치료를 받았으나 이들이 올봄에 졸업하며 피(B형)를 공급받을 길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일에 치인 부하들의 사정을 아는지라 처음에는 망설였어요. 그러나 생판 모르는 우리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사람 심정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또 지훈이 친구들의 정성도 갸륵하고요.』 당시 이 편지를 받은 오 총경의 말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장태규순경(24) 등 43명이 헌혈을 자원했고 나서 정씨에게 피를 나누어 주자는 기동대원들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정씨돕기는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우선 피를 직접 주입하는 일반헌혈과 달리 뽑아낸 약 3백㏄의 피에서 60㏄가량의 혈소판을 분리해 주입하는 성분헌혈이어서 헌혈이 2시간씩이나 걸렸다. 항상 대기상태에 있어야하는 이들이 근무시간을 조정해 가며 헌혈을 하기가 큰 일이었다.
또 대원가운데 가벼운 간염증세로 헌혈할수 없는 경우 대타를 찾아야 하고 인사가 있으며 순번을 다시 짜고 새 희망자를 모집해야 했다.
특히 5월부터 6월 중순까지는 시위가 잇따라 이 기동대 소속 김춘도순경(26)이 숨지는 등 계속되는 비상근무때문에 헌혈이 펑크날 위기(?)도 몇번을 넘겨야 했다.
그러나 병세호전으로 말을 할수 있게된 정씨와 대화를 하며 조속한 회복을 기원하는 것이 요즘 제1기동대원들에게는 큰 즐거움이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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