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개혁” 수용 첫작품/조계종 재산공개 발표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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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총무원의 주지 임명권등 강화 포석도/집행부불신·재산파악 어려워 진통예상
대한불교 조계종이 14일 산하 전국 사찰의 재산 및 연간 예산을 공개키로 결정한 것은 김영삼정부가 수차례 강조해온 종교계 개혁의지에 종교계가 「교감」 하여 스스로 취한 첫 작품이란 점에서 자못 의의가 크다.
조계종이 14일 오전 열린 원로회의(의장 송서암스님)의 결의 형식을 밟아 재산 공개방침을 전격적으로 발표하면서 같은날 오후 25개 교구본사 주지회의를 소집해 이 결정을 따르게 한 것은 이번 방침의 배경에 드리워진 시대적 압박감과 아울러 예상되는 사찰별 반발을 사전에 방지하자는 의도를 읽게한다.
이날 서의현 조계종총무원장이 『이번 결정에 대해 많은 사찰로부터 거센 저항과 도전이 예상되나 이것은 시대정신에 따른 개혁적 불교 사정조치』라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풀이를 뒤받침하고 있다.
서 총무원장은 『사찰재산을 주지가 임의로 처리해온 것은 여러 사람이 다 아는 사실로 이 때문에 스님들의 청정심이 그르쳐졌고 종단내 싸움의 가장 큰 원인이 되어왔다』며 『이 결정은 단순한 사찰의 재산 공개차원을 넘어 승려본연의 자세를 되찾자는 뜻을 갖고있다』고 덧붙임으로써 이를 계기로 종단내 고질적 주지직 다툼도 어느 정도 불식해 보자는 의도를 나타냈다.
조계종은 이같은 의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위해 다음달안으로 중앙종회를 개최,사찰재산 및 예산 내용공개에 불응하는 주지를 파면·경고할 수 있도록 종헌을 개정할 예정이다.
종헌이 개정되면 총무원은 주지 임명권 뿐만 아니라 각 사찰의 재정감독권까지 장악,그 권한이 한층 공고해 질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 조계종 집행부에 대해 일부 승가대학 학인 및 소장승려를 중심으로 불교 개혁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는 등 불신감이 가시지 않고 있어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개혁대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현 집행부가 개혁운동을 주도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 사찰별 재산내용을 아는 사람이 주지와 재무관계자 등 극소수에 불과해 정확한 등록이 이뤄지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은 이에대해 서암스님을 위원장으로 하여 혜암·원당·운경·석주스님 등으로 5인 위원회를 구성해 실사에 만전을 기한 다음 불교재산의 재단법인화도 검토할 방침이다.
그렇더라도 사찰재산 등록문제는 현행 종헌·종법에도 규정돼 있으나 사실상 유명 무실한 예에 비춰보면 이번 재산공개방침도 유야무야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번에 종헌이 개정되면 종단개혁의 표적이 돼왔던 주지에 대한 제재,장치가 제도화됨으로써 불교계 정화에 일대 전기가 마련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조계종의 재산 공개방침은 지금까지 성역시돼온 종교계의 재산현황 및 축적 논란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달에 개신교의 한국교회협의회가 촉구한 교회재산공개를 비롯,가톨릭 등에도 재산공개를 현실화시킬 가능성이 높다.<이헌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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