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보안사 합작범행“충격”/베일 벗겨지는 「5공 군정치테러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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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강경파 중심 과잉충성의 산물/당시 보안사령관 이종구씨도 개입가능
14일 정보사 민간인테러단 운영사건과 관련한 국방부의 수사발표는 5공당시 정치인들에게 가해졌던 테러행위가 정보사만의 단독범행이 아닌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와의 합작품이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지난 85년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의 상도동 자택 침입사건을 지시한 배후가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이었다는 한진구씨(54·육사18기·남성대 골프장 대표·예비역 소장)의 진술은 지금까지 정보사가 정치테러의 주범으로 인식돼왔던 사회적 통념을 뒤집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보도 거의 사실
이에따라 그동안 정보사 차원에서만 진행돼왔던 수사방향도 차츰 국군기무사령부와 당시 사령관이었던 이종구 전 국방장관(57·육사 14기)쪽으로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또 당시 국내정치 상황과 관련,장세동 안기부장(육사 16기)과 이종구 보안사령관,이진삼 정보사령관(57·육사 15기·전 체육청소년장관) 등 군내 강경파들이 정치공작의 일한으로 이와 유사한 정치테러 사건을 자행했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국방부는 이날 발표에서 『한진구씨에 대한 조사결과 이 사건에는 85년 당시 이진삼 정보사령관과 보안사 정보처장 박동준준장(55·갑종 151기·예비역 소장) 등이 개입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 이들 3명의 혐의사실을 서울지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가 지난 5일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지 9일만인 이날 군수사당국은 그동안의 수사결과를 처음으로 발표하면서 당시 보도내용이 대부분 사실이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다만 김형두씨를 비롯한 김영삼의장 자택침입사건 가담자들이 85년 10월 범행당시 마취제와 권총을 휴대했었다는 당사자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당국은 이어 한씨가 김영삼의장 자택침입 및 양순직 신민당 부총재 노상테러사건 외에 김동주의원에 대한 폭행을 기도했다 포기했었다는 사실도 확인해 주었다.
군수사당국에 따르면 한씨는 이진삼 당시 정보사령관으로부터 보안사 정보처장 박 준장을 만나보라는 지시를 받고 85년 10월10일 박 처장을 만났으며 박 처장은 한씨에게 김 의장 자택침입 및 서류절취 등 임무를 부여받았다.
한씨는 또 86년 4월초 다시 보안사 박 처장으로부터 양 의원 폭행임무를 받았으며 이들 두 사건에 관한 계획을 모두 이진삼 사령관으로 보고,그의 최종지시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초진술 번복
당국은 그러나 이같은 한씨의 진술에 대해 이씨를 자택에서 조사한 결과 이씨가 자신에 관한 혐의사실을 전면 부인했으며 보안사 박동준 당시 정보처장은 한씨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자 지난 10일 오전 미국으로 돌연 출국해 버렸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실무책임자로 국방부 합조단에 최초로 구속된 이상범중령(44)과 이 중령의 진술로 군검찰에 소환된 한씨 등은 공교롭게도 수사과정에서 한두 차례씩 자신들의 최초진술을 번복하는 등 공통점을 드러내 보였다.
이 중령은 처음 테러단 운영이 자신의 단독범행이라고 했다 나중에서야 배후에 한씨가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으며 한씨 역시 처음에는 85년 당시 정치상황과 관련,충성심의 일환으로 자신이 직접 테러단 운영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최근에야 이진삼·박동준씨 등이 개입돼 있음을 밝혔다.
이는 정보분야 종사자들에게 일종의 불문율과도 같은 것으로 수사과정에서 자기 이외의 어떤 인물에 대해서도 밝히기를 거부한다는 금기사항을 이들 스스로가 깼다는 점에서 예전과는 다른 특이성을 보여준다.
이번 군수사당국의 발표를 계기로 과거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정치테러간의 실체가 비로소 공식 확인됐으며 여기에는 보안사·정보사·안기부 등 이른바 최고 권력기관들이 공범으로 가담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함께 드러나 이들 기관에 대한 국가통치권 차원의 중대결단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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