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행위」 어디까지 선 긋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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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근 독립유공자로 훈·포상된 민족지도자들의 일제하 친일행적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그간 독립유공자중 친일행위자가 포함돼 있다는 지적은 학계와 재야일부에서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보훈처가 정식으로 이들을 재심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80년대 들어 본격화된 일제하 친일파연구의 결실로 학계와 일반에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반민족행위자들의 죄상을 낱낱이 파헤쳐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환영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36년간이란 긴 세월동안 일제치하에서 대부분이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이 기회에 친일행위의 정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한다는 의견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어디까지를 친일행위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1948년의 「반민족행위자 처벌법」규정 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 후 친일파문제는 여러 차례 거론됐어도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 등으로 구분한 반민법 이상의 진전 없이 선언적 수준에서 그쳤었다.
학계의 근·현대사 연구도 독립운동사중심으로 진행돼 규탄·심판 대상으로서의 친일행위규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최근들어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 내에서도 일제하 친일행위에 대한 포괄적 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공적심사위원회는 반민법에 규정된 정도 내에서 도의원·군수이상 등 일제의 대한식민정책의 수립과정에 참여한 인사는 심사대상에서 배제하고 있으나 최근들어 교원·면서기 등을 지낸 사람들까지도 정확한 판단을 위해 심사를 보류 중에 있다.
국민대 조동걸 교수는 『일제하에서 말단행정직을 맡았던 사람들의 친일행위는 민족감정에 배치되는 면도 있으나 인간적 이해가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민족적 차원에서 공로를 인정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연금을 주는 독립유공자의 경우에는 특별기준을 적용해 어떤 친일행위자도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 일부에서는 현재 문제가 된 민족지도자들의 친일행위여부를 놓고 흑백 2분법적인 단순논리의 적용을 경계하는 입장도 있다. 독립운동사와 관련, 친일행위여부를 남북간 이데올로기 대립상황에서 이뤄진 건국운동 전과정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반민족연구소의 김봉우 소장은 『프랑스에서는 대독협력자 1만여명을 즉결처분하고 10여만명 이상을 강제노역형에 처했어도 국민들이 미흡하게 여길 정도였다』며 배족행위에 대한 엄격한 심판을 주장하고 있다. 김 소장은 최근이 연구소가 펴낸 『친일파 99인』이 불과 두달 사이에 무려 10만질이나 팔렸다며 친일행위자에 대한 사회적 심판요구가 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보훈처에서는 지난해 훈장명칭을 개정하며 독립유공자유족회 등의 재심요청을 받아들여 광복군 등 70여명의 독립유공자들에게 새 훈장을 수여하지 않음으로써 일말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시킬 계획임을 시사했다. <윤철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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