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무사임 독 정국/적군파 「그람스」 사인싸고 시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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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총격사 아닌 “즉결처형”설 충격
지난달 27일 구 동독 메클렌브르크 포어포메른주 바트 글라이넨역에서 경찰과 총격전 끝에 사망한 적군파(RAF) 행동대원 볼프강 그람스가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즉결 처형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있다. 이 사건과 관련,루돌프 자이터스 독일 내무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4일 사임을 발표하는 등 수습에 나서고 있지만,그람스의 죽음은 정치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야당인 사민당은 5일 94년 총선대책본부를 발족시키면서 이번 사건의 경위에 대해 갈팡질팡했던 알렉산데르 폰 슈탈 검찰총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등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검·경찰이 처음 발표한 것과는 달리 그람스가 단순히 경찰과의 총격전 과정에서 사망했거나 혹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대테러 특수부대인 GSG9 요원에 의해 처형됐다는 주장은 시사주간 슈피겔지가 폭로했다. 슈피겔은 5일자에 당시 작년에 참가했던 한 GSG9 요원의 말을 인용,철로에 누워있던 그람스에게 GSG9 요원 2명이 다가가 머리에 총을 대고 쏘았다고 보도했다.
이 증인은 그람스가 당시 도주를 기도하지 않았고 그의 권총은 2m밖에 떨어져 있어 대응사격을 할 수가 없었는데도 GSG9 요원이 그를 처형했으며,다른 요원의 그의 복부에 권총을 여러차례 발사했다고 증언했다.
검찰도 그람스의 시체에서 근접사격시 생기는 화약흔을 발견,그가 지척의 거리에서 사살됐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사고당시 현장에 있던 기관차 운전수와 또 다른 증인은 GSG9 요원이 그람스에게 총을 쏘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고,GSG9 요원들도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어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검찰의 수사결과 만약 슈피겔의 보도가 사실로 판명된다면 그간 국제적 명성을 떨쳐온 GSG9는 존폐의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GSG9는 연방 내무부 국경수비대 산하의 대테러 특수부대로 지난 77년 아랍테러리스트들이 독일의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로 납치했을때 납치범을 모두 사살하고 인질을 구출한 신화를 만들어 낸바 있다. 나아가 그람스의 현장처형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 문제는 가뜩이나 인기없는 콜정권을 더욱 궁지로 몰고 갈 것으로 전망된다. 아무리 적군파 행동대원이라도 현장에서 처형한다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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