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제 열기」 잠재우기 공작/85년 개헌정국과 「정치테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강야에 위기감… 물리력 동원/「양김」의 지도력 훼손에 초점
김형두·정팔만씨의 폭로로 밝혀진 「야당정치인 테러」가 일어나 85∼86년은 이른바 직선제 개헌정국으로 불리던 긴장의 시기였다.
12·12,5·17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의 5공정부는 85년 2·12 총선을 고비로 민주화투쟁이라는 야권의 거센 도전에 부닥쳤다.
양김이 배후에서 위력을 발휘한 신생 신민당의 돌풍과 곧 이어 민한당붕괴 등 전혀 예기치않은 사태에 집권세격은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당시 야권은 신민당과 신민당 탄생의 모태가 된 민추협을 중심으로 반정부 민주화 활동의 전열을 갖추었다. 아울러 국민적 지지를 받고있는 김영삼·김대중씨가 투쟁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함으로써 활기를 띠었다.
이에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국민들도 꿈틀대기 시작,직선제 개현 열기는 순식간에 전국을 뒤덮었다.
○정면대결 양상
「강야」 출현에 위기의식을 느낀 집권세력은 정권안보에 총력을 기울여 정국은 정면대결 양상으로 치달았다.
야당인사들의 가두투쟁에 최루탄 세례·육탄저지·닭장차동원 등 길거리정치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당시 집권세력이 활용한 최대의 방어수단은 정보 공작정치였다.
정보공작의 지휘부는 안기부였으며 이른바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 계획·조율됐음이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을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당시 정보공작의 최대목표는 야당의 힘꺾기였으며 김영삼·김대중씨의 정치력 훼손에 활동 초점이 모아졌다. 양김씨를 비롯,영향력 있는 야권인사들이 수시로 가택연금을 당했고 회유와 협박이 횡행했다. 도청과 미행으로 웬만한 지도급 야권인사들은 사생활이 노출된 상태에서 지내다시피 했다. 한편에선 야권내부 분열책도 매우 집요하고 교묘하게 진행됐음이 추후 드러났다.
정보공작정치에 동원된 조직이 안기부·보안사·정보사·일선경찰 등 상당히 방대했음에도 「테러단」까지 조직한 것은 모종의 특별임무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야분열책 교묘
민간인 테러단이 김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턴 85년 10월은 신민당 특히 김대중씨의 동교동계가 국회 부의장 인선을 둘러싸고 내분을 겪던 때였다.
고 김록영부의장 후임으로 사실상 내정되다시피한 조연하의원이 김대중씨로부터 지명받지 못하면서 시작된 내부갈등은 유제연의원 지명철회,이용희의원 지명→낙선 등 파동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씨는 지도력에 적잖은 손상을 입었다.
정보당국으로선 양김중 또 다른 한 김마저 정치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면 야권의 힘을 한풀 죽이는 절호의 기회라고 계산한 계 아닌가 여겨진다.
「테러단」이 상도동에서 노린 서류가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당시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을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수 있는 내용을 희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만약 정치자금 수수내용이나 자금제공자 명단이라도 확보할 수 있었다면 문제가 다소 달라졌을 지 모른다. 그러나 김 대통령 측근들은 『그런게 있을리 없다』고 펄쩍 뛸뿐 아니라 도둑맞은 사실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도동침입 행동대원들에겐 『경호원한테 들키면 맞서 싸워라. 너희들은 민간인 신분일 뿐이다』는 지시가 내려졌던 사실을 전해들은 상도동 측근들은 『당국이 야권 내부싸움인양 연출하려던 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양순직 당시 신민당 부총재를 테러한 86년 4월을 신민당의 개헌 현판식 투쟁이 전국으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당시 양 부총재는 이중재 부총재와 함께 김대중씨의 동교동계대리인 역할을 하며 원칙론을 앞세워 당국으로선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눈엣가시 제거
양 부총재를 테러한데 이어 다음날엔 상도동계의 한 초선의원을 테러할 예정이었던 사실을 종합해 보면 야권인사에 대한 물리적 위해로 공포분위기를 조성,불길처럼 번져나가던 개헌열기를 차단하려는 속셈이었음이 분명해진다.
당시 야권인사들은 지금도 감시·협박·회유당하던 상황을 돌이켜보면 『섬뜩해진다』고 증언한다.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 수행비서였던 김기수씨(현 대통령수행실장)는 『항상 신변위험을 느꼈다』면서 『우리를 감시하던 보안사 대위와 다툰뒤 한동안 나도 테러당할까 무서워 귀가하지를 못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허남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