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은 없고 방법론만 판친다" 학계·문단 자성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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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문학 연구와 교육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무분별한 외국문학이론의 수입이 오히려 내용은 없고 방법론만 난무하는 「이론부재현상」을 부르지는 않았는가, 이러한 이론부재가 문학작품 자체로 문학교육을 이끌지 못하고 말을 위한 말만 무성하게 하는 혼란을 가져오지는 않았는가 하는 반성이 학계와 문단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근간 반년간 문예 이론지 『현대비평과 이론』6호는 「문학이론의 수용과 교육」이라는 특집에서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 특집에 내놓은 논문 「이론 교육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에서 도정일씨(경희대 영문과교수)는 『한국의 문학교육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학이론을 갖지 못했으며 특정한 방법론들만 임시변통 식으로 수입. 유행시켰다고 말했다.
도씨에 따르면 이론이란 문제를 생산하는 체계나 문제를 정의 내리는 능력인 반면 방법론은 이론이 배출해낸, 구체적인 작품에 대한 접근법을 말한다. 따라서 이론부재 속에 방법론만 무성했다는 것은 우리 나름의 문제를 생산할 능력 없이 기계적으로 방법론만 적용, 문학에 대한 논의를 본질과 먼 말들의 잔치로만 끌어 왔다는 지적이다.
석경징씨(서울대영문과교수)는 같은 특집에 실린 논문 「문학비평과 문학교육, 그리고 문학의 이론」에서 『문학작품의 빈곤성이 문학작품에 대한 말만 무성치 자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학작품을 1차적인 말, 비평을 작품에 대한 말인 2차적 말, 이론을 비평에 대한 말인 3차적 말로 각각 구분한 뒤 1차적 말인 『문학작품의 부재와 빈곤이 2차 및 3차적 말인 비평과 이론의 불균형적인 양산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정해진 양의 문학수업 시간을 충분히 메울 작품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수나 교사는 부득이 비평과 이론으로 이를 메울 수밖에 없다며 석씨는 한국문학과 교육을 위해 보다 많은 작품발굴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평문 「작품과 사람」(『현대문학』7월호)에서 『예술작품의 평가는 일차적으로 작품적 성취도와 기여도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개인사가 그 평가를 압도해서는 안된다』고 주장, 주목을 끈다.
불행한 현대사를 살았던 우리는 한 작가를 그들의 작품과는 별도로 친일·용공·반공 등으로 매도하는데 익숙해 있다. 그러나 유씨는 『예술적·심미적 능력과 도덕적·윤리적 의무는 의좋은 동반자적 관계는 아니다』며 이제 『역사적 공정과 평형감각을 찾아 개인사가 작품의 성취도와 기여도를 압도하게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동일씨(서울대국문과교수)도 최근 펴낸 책 『우리학문의 길』(지식산업사간)을 통해 우리 학문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글을 제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씨는 『근래 몇 십년 동안 정통성을 상실한 떳떳하지 못한 권력이 복종 아닌 비판, 모방 아닌 창조를 두렵게 여기고 외세추종이 선진화를 위한 최상의 방안이란 착각을 주입시킴으로써 우리의 학문을 죽였다』며 이제는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정착과 주체적 방법론의 개발로 세계에 부끄러움 없이 내놓을 수 있는 이론·학문 위상을 정립해 나가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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