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산 복합체」의 침몰|문창극<워싱턴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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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국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은 미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피상적으로 보면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정치지도자를 선출하고 법에 의한 통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계층이나 집단이 계속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60년대 들어서면서 고조돼 라이트 밀 교수 등으로 대표되는 엘리트 이론가들은 미국 민주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저작들을 발표했다.
라이트 밀 교수는『들어라 양키들아!』『권력 엘리트』의 저작을 통해 미국이 겯고 다원주의 사회가 아니라 엘리트 지배사회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엘리트 집단의 구체적인 형태로「군산 복합체」또는 군부와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집단, 그리고 정치집단의 연합체인「군관 산 복합체」라는 표현이 한때 유행했었다.
냉전이 시작되는 50년대 초반부티 막대한 국방예산을 쥐고 있는 군부와 군수산업 예산을 따내려는 방위산업체, 그리고 방위산업체와 연결된 정치인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나의 큰 연대를 형성했다.
군부는 냉전을 이유로 군비증강을 요구하고 의회나 정치 지도자는 군비예산을 공급하며 군수산업체는 이 돈을 받아 무기를 생산하는 대가로 군부와 정치인에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일련의 연결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의원들은 군수산업이 지역구의 고용창출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정치자금 원이 된다는 점에서 국방예산의 감축을 반대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B-1 핵 전략 폭격기 개발의 경우 미 공군은 의회의 예산지원을 얻기 위해 제조 하청 공장을 미국전역에 확산시켜 4백30개의하원 지역구중 4백 개 지역구에 하청을 주었다.
하청공장이 들어선 지역의 4백 명의 하원의원들은 이 폭격기가 생산이 안될 경우 지역구내에 실업자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B-1 폭격기의 개발을 지원할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냉전종식으로 미국 내 군산복합체 및 군 관산 복합체가 점차 붕괴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방예산 감축으로 미국 경제에 대한 국방분야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집단간 밀월관계도 금이 가는데는 오히려 갈등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군부와 군수산업간 관계를 보면 과거엔 여유 있는 자금으로 기업들에 사업을 분배했으나 요즘 웬만한 일거리는 각 군의 자체공작 창에서 해결하고 있어 서로가 소원해졌다. 예산 감축으로 각 군 자체가 인원을 줄여야 할 입장이기 때문으로 심한 경우 군부와 군수산업체가 경쟁 관계에 들어갈 처지가 된 것이다.
군수산업이 퇴락 해 짐에 따라 대 의회 영향력 또한 약해졌다.
과거에는 정부가 군수산업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방위 산업체가 직접 의회에 대해 로비를 벌여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얼마 전만 해도 제너럴 다이내믹스(GD) 사는 공군이 구입을 거부한 F-16기 24대를 의회로비로 구입토록 압력을 넣어 성공시킨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식의 로비도 불가능하게 됐다. 「물 좋은 상임위」로 꼽혔던 국방위가 이제는「한물간 상임위」로 전락했다.
지난l월 상임위 구성 때 50여명의 초선의원 가운데 국방위를 희망한 의원은 7명뿐이고 새로 각광방기 시작한 과학 및 기술위원회는 l9명이나 몰렸다.
이러한 변화는 아직은 초반에 불과하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 사회구조 변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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