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우리경제 「일일성적표」|무역 적자 하루 65억원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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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남들 다 있는데 우리도 이제 자가용 하나는 장만해야지요.』
『그래도 요즘은 집 값이 들먹거리지 않으니까 좀 살겠어요. 집주인이 전세금 올려달라는 이야기도 안하고….』
한 가정으로 보면 「벌이」와 「씀씀이」는 경제생활의 기본이자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씀씀이」는 「벌이」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그런 면에서 「씀씀이」가 커지기 위해서 경제가 커 가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각 가정에서는 하루에 얼마를 특히 어떤 곳에 소비 지출하고 있을까.
한국은행은 최근 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연간 경제활동을 재분석해 일일 경제지표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 우리경제의 하루 성적표를 만든 셈인데 지난해는 경제가 안 좋았던 만큼 성적도 좋지는 않았다.

<집·전세값 안정>
우선 지난해 전체 가계 소비지출액은 약1백20조원이며 하루로 따지면 3천 3백 38억원으로 3천억원 대를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가구 수가 1천2백10만 가구(추정)이므로 하루에 가구 당 2만 7천 6백원정도 돈을 썼다는 이야기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란 말도 있듯이 뭐니뭐니 해도 역시 먹고 마시는데 들어가는 돈이 가장 많다. 그림에서 보듯 전체 소비지출 중 음식료와 담배 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낮아져 우리의 생활수준이 점차 선진국형으로 가고 있는 것을 나타냈지만, 아직까지 3분의1을 넘는 수준이다.
이 식음료와 담배 값 비중은 가계지출중 음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인 엥겔계수와 비슷한 개념인데 엥겔계수는 20이하면 상류 생활, 25는 여유있는 생활, 30은 약간 여유있는 생활, 50은 겨우 살아가는 생활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지난해 우리의 평균적인 생활수준은 점차 여유있는 생활 쪽으로 접근해가고 있는 상태로 볼 수 있다.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내 집 없는 설움이 지난해는 좀 덜했다. 재작년만 해도 그 전해에 비해 26·9%나 올랐던 임대료 등 주거관련 비용이 작년에도 전체 소비지출 중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졌지만 전년 비 증가율은 14%로 둔화됐다. 그만큼 집 값이나 전세 값이 안정됐다는 이야기다.

<설비투자 저조>
소비지출항목 중 그 전해에 비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은 교통·통신비다. 물론 그 증가율이 17·4%로 91년(25·8%)에 비해 낮아지긴 했지만 7개로 분류된 지출항목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는 것은 경기부진과 소비위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가용 승용차를 새로 사서 굴리는 등 개인교통비에 많은 돈을 쓰고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해 1년 중 87만6천대의 새 자가용 승용차가 팔렸다.
우리 경제의 일기장 내용이 나라 전체라고 해서 썩 좋을게 없다.
『오늘도 수입이 수출보다 65억원이나 많으니 올해도 무역에서 남기기는 글렀다. 하루에 30개의 기업이 쓰러지면서 부도금액이 2백억원이나 돼 창피한 신기록을 세우게 생겼다. 과열이라고 해서 내리 눌렀는데도 여전히 기계 갖추기보다는 집 짓는데 많은 돈을 쓴다.』
지난해 우리는 열심히 물건을 만들어 해외에 팔았지만 그래도 사들여온게 더 많았다. 설비투자가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인 가운데 건설투자는 여전히 설비투자량 보다 1·7배가 많았다. 연간 4·7%의 성장률 속에 국민총생산이 하루에 6천 3백억원씩 불어났지만 사상최대의 부도 기업수로 기록된 1만7백69개 기업이 쓰러지면서 하루 평균 부도금액이 1백93억원이나 됐다.
또 수출입은 하루에 각각 1천9백66억원, 1천9백66억 원이었다. 1인당 GNP는 1만 4천원씩 늘어나 연간으로 5백27만원(6천7백49달러)을 쌓았다.
지난해 하루평균 무역수지 적자(65억원)는 물론 91년(1백45억원)에 비해서는 절반수준으로 줄어든 것이지만 경기가 좋은 편이었던 90년(27억원)에 비해서는 여전히 2·4배나 되는 높은 수준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해 하루평균 2천2백63억원 꼴로 투자(총 고정자본 형성)를 했는데, 91년(2천1백53억원)보다는 5·1%가 늘어나 90년 대비 91년 증가율(24·7%)과 비교하면 5분의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그만큼 전반적으로 투자가 부진해 하반기 이후 성장률이 급강하하면서 결국 80년 마이너스 성장이래 가장 낮은 4·7%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통화18·4%늘어>
예금은 하루평균 2천3백85억원씩 늘어났으며 대출금은 이보다 2백38억원 많은 2천6백23억원씩 증가했다. 총통화가 91년보다 18·4%늘어난 2천3백70억원씩 나돌았으나, 경기부진 속에 기업부도가 늘어나면서 부도금액은 90년부터 매해 배로 늘어났다.
올해는 새 정부의 등장으로 「경제의 틀」자체가 크게 바뀌고 있으나 「벌이」가 커져야 「씀씀이」도 늘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루하루의 경제가 건실해야 한해 살림도 좋아지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양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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