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협상 때 문학 인용 화기 넘쳐"|3년째 「사내 독서 문화 대학」 운영-동양기전 조병호 사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사장과 직원들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중소기업이 있다. 인천 남동 공단에 자리잡은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동양기전. 직장인들이 하루 일을 마친 뒤 책 읽는 틈을 내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동양기전의 「사내 독서 문화 대학」은 91년 개강이래 3년째 알차게 운영돼오고 있다.
특히 사내 독서 문화 대학에 꾸준히 참여해온 50여명의 동양기전 직원들은 독서 수업이 열린 지난 4학기 중 총50여권의 책을 독파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눈길을 끌었다.
『가정과 일터의 제한된 경험만으로는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윤리 의식의 확립이 쉽지 않은데 독서는 개인이 일상의 제약을 극복하고 가치관을 스스로 확립할 수 있도록 돕는 좋은 방법입니다.』 동양기전 대표이사 조병호씨 (47)는 사내 독서 문화 대학을 개강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동양기전에 독서 대학이 처음 문을 연 것은 91년6월.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과 직원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는 이 독서 대학에선 사장도 간부도 말단 직원도 모두 함께 같은 책을 읽는 학생일 뿐이다. 현재 인천 공장의 총 직원 2백30명 중 68명의 직원이 재학생으로 등록돼 있다.
강의는 2주일에 한번, 퇴근시간 후 회사에서 열리는데 학생 (?)들은 주로 퇴근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고 난 후 강의에 참여해 책의 저자나 관련 인사·교수들의 강의를 들으며 함께 토론하기도 한다.
『아마 회사 노사 협상 테이블에서 노사 양측이 문학 작품을 인용한 경우는 여기 말곤 없을 겁니다. 직원들이 책을 꾸준히 읽으면서 전보다 더 논리적이고 자기 표현 방법도 달라졌어요.』
동양기전이 독서 대학을 열게 된 데에는 사장 조씨의 유별난 독서열이 한몫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씨의 월 평균 독서량은 10여권 정도. 그는 『독서 대학에 참여함으로써 문학 서적을 접하게 돼 평소 경영학·철학 관련 서적에 치우친 편식에서 벗어나 균형을 잡게 됐다』고 자랑했다.
뿐만 아니라 독서 대학에서 읽은 책 가운데 소외 계층·사회 불신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작)이 인상깊었다는 조씨는 『독서 대학이 직원들의 자기 발전은 물론 노사 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양기전은 인천 공장뿐만 아니라 지난해 창원 공장의 독서대학 개강에 이어 현재 이리 공장도 「계획 중」. 조씨는 독서 대학 참여 직원이 기대보다 적은게 아쉬울 뿐 연간 1천4백만원 정도 드는 지원금이 아까운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은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