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권리 중「안전 권」거의 무시|법률과 정부조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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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오는 7월1일로 소비자보호원발족 6주년,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의 발효 2년을 맞는다. 그동안 소비자보호원은 민간 소비자단체와 더불어 소비자의 상담·피해구제에 적잖은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차원의 소비자보호 시책이 큰 진전 없이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등 미흡한 면이 적지 않다. 소비자보호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주 1회 총 4회 시리즈로 엮는다. <편집자 주>
한국 소비자 시책의 가장 큰 맹점은 소비자 7대 권리 중 어떤 의미에서 가장 우선돼야 할「안전할 권리」가 거의 무시되고 있는 점이다.
12일 발표된 신 경제 5개년 계획 소비자 부문에도 소비자의 안전문제는 여전히 미흡하다.
미국의 경우 공산품과 일반소비생활용품은 소비자 제품안전위원회가, 식품·의약품·화장품은 미 식품의약국(FDA)이, 육류검사는 식품안전검사 청(FSIS)이 맡아 소비자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신 경제 계획에서도 95년까지 FDA수준의 식품·의약검사기구를 만든다고 했지만 공산품과 일반 소비생활용품의 안전성 확보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등 민간소비자단체 관계자들은『정부가 소비자문제를 기본적으로 공급자(사업자)측면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어 소비자보호가 지지부진한 측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점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미 89년 시안을 마련한 제조 물 책임 법(PL법)은 사업자들의「시기상조」라는 반발로 4년째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또 소비자 행정기구라 할 경제기획원에는 유통소비 과에 고작 1명의 담당사무관이 배치돼 온갖 소비자정책을 다뤄 물리적으로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기엔 속수무책이다.
개별부처도 상공자원 부·보사부가 기본적으로 모두 관련업계·전문 직능 인들의 육성·지원측면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고 공업진흥 청의 경우 수출품검사와 이제는 기업의 기술수준 향상으로 실효성도 거의 없는 대기업 등에 대한 기술지도 등을 할 뿐이다.
말하자면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시각에서 출발하는 정부의 강력한 기구는 없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 김석철 박사(정책개발연구실)는 『수입쇠고기를 동물이 전염병 등에 걸렸는지 체크하는 농림수산부산하 동물검역소에서, 수입 밀 등 수입식품을 외항선원에 대한 에이즈·외국 풍토병 등의 검역을 담당해야 하는 보사부 검역소에서 검사하는 것 등은 모두 편법에 다름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외국은 다르다.
소비자문제를 다루는 행정기구가 부 또는 청단위로 돼 있고 민간단체와의 협력도 긴밀하다.
제조 물 책임 법만 하더라도 미국·유럽 등 모두 24개국에서 제정돼, 예컨대 자동차를 몰고 가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그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는지, 아니면 조립업자나 부품납품업자의 책임인지 등을 철저히 가려 사업자에게 책임이 귀속될 경우 손해 배상토록 돼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정준 정책연구부장은『국내에 제조 물 책임 법이 없으면 우리는 외국이 원하는 수준에 맞춘 질 높은 제품을 수출하고 반대로 질이 형편없는 제품을 수입해 결국 외국소비자에겐 득을, 국내소비자에게는 실을 안기는 결과가 된다』고 우려했다.<김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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