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통해 본 인류의 진화-헬렌 피셔 저『성의 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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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인류학 및 고생물학·고고학의 최신 연구성과를 바탕으로『인류의 진화를 촉진시킨 것은 섹시한 여성이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새로운 진화론. 지은이는 미국의 여성인류학자로 현재 뉴욕 과학아카데미 인류학부 부소장을 맡고 있다.
오늘날의 인류는 발정기가 따로 없으며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종이다.
인류가 지금의 섹스 베테랑으로 진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약 4백만년전에 이루어진 성의 계약이라는 것이 피셔의 주장이다.
지구기온이 낮아져 숲이 줄어들게 된 1천만년 전부터 인류의 조상은 점점 면적이 커진 초원으로 나가 먹이를 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사나운 육식동물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집단의 결속이 필요했다.
초원에서 얻은 먹이를 강변의 숲 근처 등 안전한 장소로 운반하기 위해서는 서서 걸어야 했다.
직립보행은 골반의 입구와 산도를 좁게 만들어 예전보다 더 미숙한 상태의 아이들이 태어나게 됐고 이들을 양육하고 보호하기 위해 암컷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했다.
또한 직립 보행하기 때문에 아이를 등에 태우지 못하고 끌어안아야 했고 동료들과 이동하며 사냥에 참가하기가 힘들어졌다.
암컷은 이렇게 자신의 힘만으로는 아이를 기르기가 점점 어려워지자 수컷의 도움이 필요하게됐다.
도움을 받기에 유리한 것은 수컷의 눈에 띄는 섹시한 암컷-발정기가 길거나 임신 중 혹은 출산직후에도 바로 발정할 수 있는 소수의 존재-이었다. 섹시한 암컷은 임신도 더욱 자주하게 되고 이에 따라 수컷의 도움이 점점 더 필요하게 된다.
암컷은 부부관계를 맺는 일-섹스와 식물먹이를 제공하고 수컷으로부터 고기를 받고 보호받는 일-에 의해 살아남는다. 수컷과 암컷 사이에 보다 긴 결속을 맺는 경향이 진화하게 됐고 마침내 4백만년전께 이르러 성의 계약이 성립됐다.
피셔는 성의 계약이야말로 인간신체 및 성행동의 진화, 가족·사회조직·감정, 심지어 언어와 종교의 진화를 촉발시킨 점화장치의 불꽃이라고 역설한다. 원서의 부제가「인간 행태의 진화」라는 점은 진화와 인류발전의 전 국면을 성의 계약을 통해 설명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정신세계·3백2쪽·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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