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학부모 이기심이 불신 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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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내신 평가>
최근 여고동창 모임에 나갔던 윤수영씨(41·서울 둔촌동)는 몹시 착잡했다. 대학 입시에서내신 성적 반영률이 높아지는데 따른 우려와 불만의 화살이 온통 애꿎은 교사들에게 집중됐기 때문. 윤씨는 그것이 얼토당토않다고 주장했지만 교육문제의 핵심보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는「대입 예비군」학부모로서 동창생들은 『「봉투」만 밝히는 비양심적 교사들의 평가를 어떻게 믿느냐』며 야단이었다.
얘기가 지나치다 싶었던지 다른 동창생이 윤씨를 거들고 나섰다. 얼마 전 삼성복지재단이 전국 4천여명의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훌륭한 분들이 많다」는 응답이 73%를 넘었다는 보도를 예로 들며 우리 선생님들이 그 정도로 못 믿을 수준은 아니라고. 하지만 나머지 예닐곱 명은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며 「내신은 엄마점수」라는 불신과 피해의식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심지어 최근의 「촌지추방운동」후유증으로 학부모들의 학교출입이 매우 어려워진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아 윤씨를 더욱 서글프게 했다.
어려운 가정사정에도 불구하고 여고 때 담임선생님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해 6년간 중학교 교사로 일했으나 건강이 나빠져 아쉽게 교직을 물러난 친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학부모는 교사·학생과 더불어 중요한 교육의 주체로서 자녀가 정신적·물질적으로 좀더 풍요롭고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와 학교에 요구할 권리가 있어. 하지만 학부모들이 힘을 합치지 않고는 지금까지 보통 부모들이 해온「치맛바람 날리기」정도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울 거야. 하잘 것 없는 공교육재정, 국가의 권위주의적 통제가 빚은 학교의 비민주적 운영, 여기에 내 아이만 좋은 대학에 보내 잘먹고 잘살게 해 보겠다는 이기심이 교육문제에 대한 학부모들의 공동체적 관심이나 성숙한 교육의식에 걸림돌이 돼 온 것 같아.』
그제서야 교사들을 싸잡아 매도하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사실상 교사들도 그런 교육현실의 피해자』라는 얘기도 나왔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21세기 위원회(위원장 이상우)가 9일「우리의 교육은 21세기를 대비하고있는가」를 주제로 연 특별세미나에서도 내신문제가 중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날 세미나에서도『비중이 높아진 내신 평가를 고교 교사들에게 믿고 맡길 수 있어야 교사의 사회적 지위도 함께 올라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
다만 지금처럼 학교별 교과성적 종합평가 석차에 따라 내신 등급을 매기면 학생의 잠재능력이나 특정분야에 대한 특기 등은 전혀 고려할 수 없으므로, 그 평가기준을 새로 마련해야된다는 이야기에 전체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이와 함께 각 대학들도 자율적으로 단과대학별·학과별 필요에 맞게 가중치를 조정하는 선발기준을 정해 신입생을 뽑되 그 선발기준을 미리 공고하고 결과도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대부분이 공감을 표시함으로써 교육정상화를 위한 교사·학부모의 협조 가능성을 엿보이게 했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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