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BBC 개혁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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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계 방송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BBC가 거센 개혁 바람에 휩싸여 진통을 겪고 있다. BBC 70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개혁 바람이 몰아치면서 진로를 둘러싼 경영진의 내분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2만3천명의 직원들은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져 정상적 운영마저 위협받고 있다.
텔레비전 시청률은 갈수록 떨어져 BBC1과 BBC2를 합쳐 상업방송인 ITV의 40%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프로그램판매 부진으로 경영적자가 올해 경우 1억파운드(한화 약 1천2백억원)로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96년으로 예정된 BBC운영에 관한 여왕의 칙허 경신 시한을 앞두고 격화되고있는 BBC 개혁논쟁에 불을 붙인 장본인은 마머듀크 허시 회장이다..
지난 87년 마거릿 대처 당시 총리의 천거로 회장에 임명된 직후부터 그는 BBC의 대대적인 변혁을 구상해 왔다. 개혁에 반대해온 마이클 체크랜드 전 사장이 지난해 11월 사표를 던지고 물러나면서 BBC는 본격적인 개혁 바람에 휩싸이게 됐다.
신임사장이 된 존 버트전부사장은 허시회장과 함께 지난 87년 BBC에 발을 들여놓은 인사로 BBC 개혁실무를 주도하고 있다. 그의 개혁 목표는 프로그램 고급화와 경영정상화 두 가지. 이를 위해 오락물 등 대중용 프로를 대폭 축소 또는 폐지하고 뉴스와 뉴스매거진, 시사 및 역사 기획물 등에 치중하며 방만한 기구와 인원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러한 내용을 구체하한 경영개혁안을 이미 발표, 내년 여름까지 개혁 작업을 끝낸다는 일정까지 마련해 놓았다.
이 계획이 실현될 경우 BBC 직원수는 95년까지 2만명으로 줄며, 라디오의 경우 5개 전국 방송 중 2개가 폐쇄되고, BBC1 TV채널의 오락·게임 프로그램이 거의 중단될 전망이다. 또 기획물 제작에 PD 예산 책임제가 도입되는 등 제작비 지원이 전보다 훨씬 빡빡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버트사장의 개혁안에 대해 관료화, 비대화한 BBC가 어차피 한번은 거처야 할 과정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직원들도 있으나 감원 우려가 높아지면서 노조를 중심으로 대부분 직원들은 심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BBC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방송이지 소수의 엘리트만을 위한 방송이 아니라는 것이 개혁에 반대하는 직원들의 주장으로, 개혁안이 실현되면 공영방송으로서 BBC는 사실상 없어지고 말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있다.
특히 직원들과 충분한 사전협의도 없이 개혁작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버트사장의 독주에 대한 사내의 불만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 「히틀러」「크롬웰」로 통하고 있는 그는 사장취임과 동시에 국장급 이상간부를 모두 자기 사람들로 갈아치웠다는 지적이다.
1922년 라디오전파를 발사하면서 출범한 BBC는 올해로 개국 71년째를 맞고 있다. 방송왕국 BBC의 장래에 1억5천만명에 달하는 전세계 BBC 시청·청취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파리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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