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브프라임 잇단 파산…대형 금융기관과 고리…세계경제 ‘암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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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같은 ‘공포심’엔 이유가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서브 프라임 부실은 단순히 미국 주택시장을 흔들어놓는데 그치지 않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밑천삼아 만들어진 대형 금융기관의 파생상품의 연쇄 부실로 이어진다. 이는 곧 전 금융권의 신용 경색으로 확산된다. 미국 금융시장과 얽힌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 금융시장에도 직격탄을 날리게 된다. 우선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증시가 요동치고 채권 발행이 어려워진다. 미 주택시장침체·미 경기침체→담보가치 하락으로 인한 자산 부실·연체 증가→글로벌 금융시장 신용경색 심화→세계 경기 침제의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서브 프라임 사태는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도 않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1~2년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긍정적인 면도 있는 법. 월가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부실 위험을 알면서도 손쉬운 돈벌이를 택한 금융회사들의 ‘모럴 헤저드’를 치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금융시장 건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태의 발단은=서브프라임은 기본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이라도 빌린 돈을 제때 갚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거나 주택시장이 침체되고 수입마저 넉넉하지 않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지난 몇 년 경기가 안좋아지면서 주택시장은 침체하는데 금리는 올라가고 그래서 서브 프라임으로 돈을 빌린 사람들의 연체율이 높아졌다.

 서브프라임 연체율은 2004년 10.8%에서 지난해 12.3% 그리고 올해엔 14%가까이 올랐다. 예전에는 100만원을 빌려주면 10만8000원을 떼였는데 요즘엔 14만원을 잃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지난 4월 파산을 신청한 뉴센츄리 파이낸셜 같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가 큰 손실을 봤다. 현재 미국내 50여개 크고 작은 모기지 업체가 파산 신청한 상태다. 물론 대출받은 사람도 집을 압류당하는 것을 비롯해 곤란을 겪고 있다.

 ◆왜 확산하나=서브프라임 부실이 대출해준 모기지 업체의 부실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금융 회사들이 서브프라임을 고리로 서로 연결돼 있다. 서브프라임 부실이 전 금융권의 부실로 확산되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기 위해 자금이 필요한 모기지 업체들은 부동산 대출 채권을 모아서 모건스탠리나 골드먼 삭스와 같은 대형 은행에 다시 판매하고 자금을 지원받는다. 대형 투자은행들은 이렇게 사들인 모기지를 기반으로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든다. 모기지담보부증권(MBS)나 자산담보부증권(CDO)같은 상품들이다. 대형투자은행은 이런 상품을 다시 고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나 보험사와 같은 투자자들에게 판매한다.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빌린 돈을 잘 갚으면 높은 수익을 내며 잘 굴러가지만 연체율이 높아지면 ‘투자심리 악화→대출 채권 회수→투자상품·모기업체 손실’로 이어진다. 실제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반으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해온 베어스턴스 산하의 2개 헤지펀드는 막대한 투자손실을 입고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베어스턴스 워런 스펙트 공동 사장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도 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도=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서브프라임론 규모는 약 1조3000억 달러로 전체 모기지론의 13%정도다. 이보다 다소 신용도 높은 사람에게 빌려주는 알트A는 1조 달러로 10% 수준. FRB는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이 최대 1000억 달러로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000억 달러는 미국 경제 규모의 0.8%로 그 자체만으론 치명적인 규모는 아니다.

 문제는 서브프라임을 포함시킨 금융 상품이 광범위해 부실이 빠르게 확산하고 주택 대출뿐 아니라 기업금융까지 불안해 지는 것이다. 당장 서브프라임 업체나 그와 연관된 회사의 부실로 해당 기업의 주가가 크게 떨어진다. 일부 모기지 업체는 주가가 50%까지 떨어졌다. 뉴욕 증시 지난주 급락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서브 프라임 부실에 놀란 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으로 투자처를 돌리게 된다. 이는 곧바로 신흥 시장에 대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위험하지만 수익이 높아 신흥시장에 투자했던 돈이 미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으로 몰려가는 것이다. 최근 미국채 가격이 지난 5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돈을 빌려 수익이 높은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가능성도 이러한 이유로 최근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서브 프라임 공포 과장됐다” 반론도=서브프라임 규모를 고려할 때 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지난달 의회에서 “서브프라임 부실이 미국 경제의 전반적인 침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도 “영향이 제한적이며 미 경제는 여전히 강하다”고 말했다.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는 것이다.

 피델리티자산운용사도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채권시장이 불안정해졌지만, 세계경제 성장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라는 의견이다.

염태정 기자

신용 낮은 사람에게 고금리로 집담보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서브 프라임의 정확한 명칭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 론’(sub prime mortgage loan)이다. 일반적으로 10년 이상이며 변동금리 방식이다. 30년짜리 상품이 많다. ‘모기지론’은 금융사로부터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린 후 장기적으로 일정기간 동안 조금씩 나눠서 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가는 방식.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시장은 크게 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프라임 시장과 저신용자·저소득층이 많이 이용하는 서브프라임 그리고 그 중간단계인 알트A로 나뉜다. 일반 은행들도 서브프라임을 취급하지만 ‘컨트리 와이드 파이낸셜’ ‘뉴센츄리’ ‘옵션원’ 같은 전문업체들이 더 활발하다.

 서브프라임이라는 말은 프라임과 비교해서 나왔다. 프라임은 ‘프라임 레이트(rate·이자율)’의 준말이다. 우대금리란 뜻으로 우량고객, 즉 신용도가 좋은 사람에게 빌려 줄 때 받는 이자율이다. 서브(sub)는 ‘~의 아래’란 의미로 프라임 아래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높은 금리’란 의미다. 예를 들어 우대금리가 연 6%라면 서브프라임은 여기에 2∼4%의 이자를 더 붙여서 받는 것이다. 위험도가 높은 만큼 수익도 높은 셈이다.

채권 발행 힘들어져…증시선 해외자금 빠질 수도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나라도 서브프라임의 영향권이다. 국내 금융기관이 미 서브프라임 대출이나 관련 채권에 직접 투자한 것은 거의 없고 손실도 미미하다. 하지만 ▶채권 발행▶해외투자 펀드▶주식시장의 급등락과 같은 영향마저 벗어나긴 어렵다.

 안전자산 선호로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 매력이 떨어지면서 먼저 채권 발행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발행하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의 가산금리는 이달 들어 한달 전에 비해 30bp(1bp=100분 1%) 확대됐다. 가산금리가 높아진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채권투자를 그만큼 꺼린다는 의미다. 그런만큼 이자를 더 많이 줘야 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최근 5억 달러 규모의 해외 채권을 발행하려던 계획을 연기하기도 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회사채 발행은 당분간 더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규모는 4월 50억 달러에서 지난달 20억 달러로 줄었다.

 우리투자증권 신환종 연구원은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 물량 중 일부가 국내 회사채 시장으로 돌아올 경우 국내 시장엔 공급이 늘어 기업들이 비싸게 자금을 조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도 영향을 받는다. 몇개 금융회사가 미국 서브프라임 관련 상품에 직접 투자했지만, 규모가 작아 주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란 게 증권가의 전망이다.

문제는 해외 대형 금융사들이 안전 자산으로 대거 자금을 이동시킬 경우 한국에서 대거 주식을 팔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최근 두달새 20조원 어치가 넘는 주식을 팔아치운 외국인의 ‘팔자’가 더 강해지면 주가가 다시 급락할 수도 있다. 금융 당국이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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