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지적 테러리즘」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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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원리주의에 입각한 경전 해석은 지적 테러리즘이다. 폭탄테러보다 더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이 바로 이 지적 테러리즘이다.』 과격파 회교 원리주의자들의 테러위협에 눌려 숨죽이고 있던 이집트 지식인들이 회교원리주의의 「지적 테러리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나섰다.
원리주의의 교조적 교리해석을 비판하는 글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고 이집트 주요 일간지에는 지식인 단체명의의 반원리주의 성명이 광고를 통해 연일 게재되고 있다.
지식층의 뜻하지 않은 「봉기」에 맞서 이집트 전체인구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 회교도 세력을 등에 업고있는 원리주의 지도부는 이들을 이단으로 단죄, 종교재판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등 지적 테러리즘 논쟁으로 이집트 전체가 원리주의파와 비원리주의파로 갈라져 대립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있다.
지적 테러리즘 논쟁을 촉발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지난 3월 카이로국립대학의 이슬람언어학자 압두 자이드 교수에 대한 교수직 박탈사건.
자이드 교수는 이슬람교 성전인 코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안하는 글을 발표했으나 그 내용이 문제가 돼 신성모독으로 낙인 찍혀 교수직을 내놓게 됐다. 그가 제안한 책읽기는 원리주의자들의 즉각적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원리주의지도자들은 『성전 원문의 권위로부터 자유를 선동함으로써 원문 자체를 휴지통에 처넣으려는 이교도적 발상』이라고 규탄하고 나섰고 결국 카이로대학측의 파면결정으로 이어졌다.
이집트에서 「지적 자유의 마지막 보루」로 일컬어지는 카이로대학 역사상 처음인 교수직 파면은 지식인들의 숨죽이고 있던 양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이 문제를 표현과 신앙, 학문연구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자이드 교수에 대한 대대적인 구명운동에 착수하는 한편 본격적인 반원리주의 운동에 불을 붙였다.
원리주의자들의 지적 테러리즘을 비판한 것은 자이드 교수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파라그 포다라는 작가가 원리주의의 위험을 은근히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했다가 「이단자」로 낙인 찍혀 원리주의자들 손에 살해되기도 했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쓴 이집트 지식층의 반원리주의 운동이 과연 어떤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인지 자못 관심거리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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