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64명『반민특위 재판기록』행적 밝힌다|40여년 만에 영인본 17권으로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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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친일인물을 단죄하기 위해 제헌국회에 설치됐던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수사 및 재판기록이 40여년 만에 책으로 출간됐다.
도서출판 다락방이 17권 1만2천여쪽 분량으로28입 펴낸『반민특위 재판기록』이 그것으로 특위가 기소했던 2백21명의 친일인사 중 64명의 조사기록을 담고 있다.
이 기록들은 1949년 특위가 해체된 후 친일파가 득세하는 사회분위기와 함께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게 돼버렸으나 이번에 다락방이「반민족문제연구소」와 손잡고 총무처 서고·정부기록보존소등에 흩어져 있는 것을 찾아내 집대성했다.
친일파에 대한 단죄는 고사하고 학자들의 연구조사조차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 자료집은 친일파 연구의 가장 상세하고 근본적인 1차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현희 교수(성신여대·근현대사)는 『친일파의 진상규명과 일제잔재의 청산, 민족정기의 정립을 위한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하고『최남선·이광수 등 중요인물들을 포함한 나머지 1백57명의 기록들은 찾기 위한 대대적인 조사를 펴야 한다』고 말했다.
자료집은 피의자별로 반민특위 특별검찰부의 범죄보고서·의견서·구속영장·피의자심문조서·자술서·증인심문, 특별재판부의 피의자심문·변호인심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수록된 대표적 인물들은 반민법에 의해 최초로 검거된 화신재벌 총수 박흥식, 중추원참의와 만주국 명예총영사를 지낸 재계의 중심인물 김년수, 강원도와 충북지사를 지낸 계영목, 중추원참의 출신의 김원근·김화준, 경찰출신으로 군수를 치낸 김창영 등이다.
자료집은 특별 검찰부 활동에서 밝혀진 구체적인 친일행위의 내용과 과정·유형 뿐 아니라 친일행위자들을 옆에서 부추기고 도와준 사람들의 명단도 알려주고 있다.
또한 피의자를 변호하기 위해 진정서·탄원서를 제출하거나 법정에 출두한 사람들을 통해 친일행위자들의 조직적 반발과 내부 인간관계, 반민특위가 와해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반민특위는 49년 9월「반민족행위 처벌법」에 의해 국회에 설치되면서 거물급 인사들을 소환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나 친일관료를 중용한 이승만대통령과 그 정부, 여전치 재산과 세력을 가진 민간친일파들의 조직적인 반발에 부닥쳐 활동이 흐지부지됐다.
이승만대통령은 특위가 마음대로 사람들을 잡아가 고문한다며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가 반민특위 특별재판관장인 김병로 대법원장으로부터 특위활동은 적법한 것이라는 반박을 받기도 했다.
특히 일경출신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경찰은 테러리스트를 동원, 특위요원에 대한 암살을 사주했다가 들통나는가하면 아예 특위 사무실에 난입, 직원들을 강제 연행하고 서류를 불법 압류하는등 엄청난 반발을 보였다.
특위는 1년만인 49년9월 해산될 때까지 6백82명을 조사해 이중 2백21명을 기소했으나 재판이 종결된 것은 38건에 불과하고 체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집행유예 5명을 포함해 12명에 그쳤다. <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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