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한옥에서 자라게 하고 싶었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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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03면

툇마루 밑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하얀 진돗개, 마당 한쪽 수돗가에 놓인 빨랫돌. 대청에 놓인 피아노. 앨범에 간직된 흑백사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한옥이 계동 주영이네 ‘우리 집’이다.
‘우리 집’ 안채에는 고등학생과 중학생인 주영이 형제와 엄마·아빠가 산다. “아이들을 한옥에서 자라게 하고 싶었죠”라는 것이 주영 엄마인 박인숙 한사모(한옥사랑시민모임) 회장의 말이다. 사랑채와 문간방은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다. 게스트 하우스 이름(우리 집)은 여행객들이 “마치 내 집 같다”며 붙여준 이름이란다.

살림집 겸한 외국인 게스트 하우스- 계동 '우리집'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은 1930년대에 지어진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에 살던 주인들이 필요한 부분 부분을 그때 그때 고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집이다. 부엌은 다락을 없애 높이고, 넓혀 입식으로 만들었다. 부엌에는 세탁기도 자리 잡았고, 한쪽은 식사공간으로 이용된다. 주영 엄마는 이곳에서 가족의 식사뿐 아니라 외국인 여행객의 아침도 제공한다. 유럽식으로 잠자리와 아침을 주는 베드&브렉퍼스트(Bed&Breakfast)인 셈이다.

박인숙 회장은 호주·일본 등에서 살면서 오히려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적인 정취를 느끼도록 해주겠다는 사명감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집은 5년 전 서울시가 보존 차원에서 매입한 집이다. 박 회장은 서울시로부터 집을 빌렸다.

계획적으로 대규모 수선을 한 한옥들과 달리 필요에 따라 순차적으로 고쳐진 집이라 군데군데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활사가 보인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나름대로 손을 보아 크게 불편하지 않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작은 골목 끝에 위치한 이 집은 바깥 대문에서 안 대문으로 골목을 통해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또 안채 옆 마당으로 통하는 쪽문도 큰 대문과는 따로 만들어져 있다. 일종의 ‘집 안의 골목’ 같은 이 공간에는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게시판에는 최근 묵고 간 세계 각국 손님들이 보내온 감사 편지들이 알록달록 붙어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선 문간방으로 이어진 사랑채를 만난다. 사랑채는 방 뒤쪽 복도를 통해 변기와 샤워시설을 갖춘 욕실과 이어진다. 마당을 건너 사랑채보다 한 단 높여 지어진 안채는 부엌과 안방, 건넌방 및 툇마루로 이어진다.

마당은 전에 살던 주인이 시멘트로 발랐던 것을 박 회장이 모두 걷어내고 마사토를 깔아 흙마당으로 바꾸었다. 흙이 여름에 덜 덥고 겨울에도 미끄럽지 않아 훨씬 편안하단다. 그리 크지 않은 마당이지만 이곳에서 외국인이 전통 혼례를 올리기도 했고, 가을밤에는 동네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박 회장은 “한옥의 유지·관리는 역시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이 구석 저 구석 틈새가 많아 청소가 만만치 않다. 마당 가꾸기나 지붕 관리 등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문화를 가꾸고 지키자면 노동력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애정이 필수인 셈이다.

그는 “동네 분위기가 변해가는 것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한옥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면서 집값이 오르고 구경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급변하고 있다. 생활에 필요한 구멍가게나 약국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급 옷가게나 장신구 가게 등이 들어섰다. 한옥 동네가 민속촌처럼 단순히 관광객의 볼거리로서만 존재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박 회장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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