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영업직원 일임매매 1인당 3억꼴/활동계좌액의 43% 달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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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고객 피해배상도 평균 천9백만원/증권사노조협 조사
증권사 영업직원들이 고객의 부탁으로 돈을 맡아 임의로 주식을 사고파는 일임매매 규모가 직원 1인 평균 3억원을 넘고 있으며 전체 활동계좌(3개월에 적어도 한번 거래가 있는 계좌) 금액의 43%가 일임매매로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직원들의 57%가 할당된 약정을 올리기 위해 고객의 돈을 임의로 굴리다가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줘 피해금액을 물어준 경험이 있으며 이 경우 1인 평균 변상금액이 1천9백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증권사노조협의회(의장 김원복 대우증권노조위원장)는 25일 산하 21개 증권사 영업직원중 영업부경력이 1년이상인 2천2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증권사 영업직원 피해실태 조사·분석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
이 보고서는 증권당국이 그동안 일임매매나 개인약정목표 설정 등을 강력히 규제한다고 밝혀왔음에도 불구,증권사 스스로의 비정상적 영업행태가 근절되지않고 있어 피해를 보고있는 증권사 직원들이 대응책의 하나로 내놓고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설문결과에 따르면 영업직원들은 1인 평균활동계좌금액 7억4천1백만원의 42.9%인 3억2천만원을 고객과 충분한 상의없이 일임매매로 운용하고 있었다.
전체의 75.6%는 이같은 일임매매 등으로 고객과의 분쟁이 생겨 피해를 본적이 있으며 56.8%는 고객의 금전피해를 물어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피해금액을 물어준 경우 지난 89년이후 지난 1월 현재까지 평균 3.2회 돈을 물어줬으며 1인 변상액은 평균 1천9백만원이었다. 직급이 높을수록 변상금액도 커져 대리급 이상은 64.7%가 변상을 한적이 있으며 금액은 평균 2천만원이었고 과장급이상은 61.5%에 3천1백만원이었다. 특히 5천만원이상 물어준 사람이 8.1%나 됐고 1억원이상 물어준 사람도 29명에 이르렀다.
◎무리한 약정고경쟁이 원인/왜곡된 거래관행 시정시급(해설)
증권사노조협의회의 보고서는 일임매매로 대표되는 증권업계의 거래관행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와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설문조사를 통해 일임매매 실태를 처음 구체적으로 밝힌 이 보고서를 보면 증권사 스스로가 영업형태를 전향적으로 바꾸어지지 않는 한 당국의 정책이나 단속은 별 실효가 없는 것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증권거래법에는 일임매매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고 증권관리위원회 규칙에도 일임매매를 한 경우 이 사실을 신고토록 되어있으나 아직까지 1건의 신고도 접수되지 않은 상태여서 정책의 실효성을 의심케 하고 있다.
각 증권사들은 날로 치열해지는 영업경쟁속에 살아남기 위해 당국의 단속방침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영업직원들의 약정고 부담을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다수의 증권사직원들은 과중한 약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합리적인 투자전략을 세우기에 앞서 투자자들이 맡긴 돈을 임의로 회전시키는데 급급해 왔다. 증시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증권사의 「무리한 영업드라이브」가 일임매매의 일차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증권사직원과 투자자의 책임도 크다. 과거 증시가 폭발적 호황을 누렸던 시절 주식이라면 무조건 남는 것으로 생각한 일부투자자들이 돈을 싸들고 증권사로 몰려들어 『알아서 사달라』고 하거나 증권사 직원 또한 『맡기면 얼마를 남겨주겠다』고 권유하곤 했으며 수익을 나눠 먹는 것이 일반화된 행태였음을 상기할때 전체계좌의 43%가 일임매매이며 조사대상 직원의 57%가 고객에게 변상한 적이 있으며 변상금액이 평균 1천9백만원에 이른다는 설문결과는 결코 새삼스럽다고 할 수 없다. 증권사 직원들이 자구책의 하나로 내놓은 이번 보고서는 직원들의 피해를 주고 다뤘지만 실상 투자자들의 피해가 이보다 더 클 것은 자명하다. 일임매매가 불법이냐,적법이냐를 따지기 앞서 당국은 물론 증권사·증권사직원·투자자 모두가 일임매매 등 비뚤어진 거래관행이 낳은 폐해를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한다.<이재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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