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운동(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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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0분 일 더하기운동」이란게 있었다. 노태우정권 말기 근로의욕을 고취한다는 명분 아래 정부가 범국민적으로 추진했던 캠페인이다.
당시 국무총리실에 보고된 추진실적을 보면 참여한 연인원이 무려 3억5천만명으로 남한인구의 9배에 이르렀고 참여한 단체나 기관수도 2백54만곳을 넘고 있었다. 통계숫자만 보면 이 운동은 공전의 대성공으로 평가됐어야 옳다. 그러나 시행 1년만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버린 까닭은 이 운동이 자기도취식 전시행정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이 숫자는 대부분 결의대회나 기관장 모임,또는 피킷이나 어깨띠를 두르고 가두캠페인에 동원됐던 인원이고,그나마 각급 기관이 총리실에 보고한 내용에 과장이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실천적 사례들이 없지 않았고,평시에도 일이 많았던 부서는 업무가 가중되는 곳도 이었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장에선 시간을 억지로 메우느라 비효율적 업무처리와 에너지낭비만 늘었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우리는 3공이래 지금까지 범국민적 캠페인이 없을 때가 드물만큼 캠페인의 홍수속에 살아왔다. 「교통질서캠페인」으로 부터 시작해 「바르게 살기」「새생활 새질서」「소비절약」운동,그리고 「편지쓰기」「전통찾기」,심지어 「유산 남기지않기」운동에 이르기까지 어느 해나 연중무휴상태였다.
어느 캠페인이나 한결같이 구호와 피킷,머리띠,어깨띠,전단살포라는 양태를 갖는다. 참여한 인원은 대부분 강제동원된다. 일류관광호텔에서 호화 모임을 갖고 소비절약을 다짐하는 운동단체도 있었다. 그런 도식적인 행사를 마치 열성적 사회운동인양 착각하는 풍토에서는 국민의 외면이 있을 뿐이다.
특히 경계해야할 것은 이러한 사회운동이 관주도이거나 정치권력과 연계될 때 파생하는 부작용이다. 한때는 국민의 큰 지지를 받았던 「새마을운동」이나 「사회정화운동」이 말기에 정치적으로 오염됨으로써 쇠퇴하는 과정을 우리는 생생히 보아왔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시민운동」이 민간주도로 추진되어 곧 협의회를 결성한다고 들린다. 이 운동이 국민 저변층으로부터 자발적으로 공감하고 참여하는 개혁의 첨병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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