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밑바닥 인생 '절절하게'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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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원일(62)씨가 2002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중편 '손풍금'을 포함, 2000년에서 2003년에 걸쳐 발표한 중.단편 소설 5편을 묶은 소설집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을 펴냈다.

표제작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은 여섯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보육원에 맡겨져 어렵게 성장한 29세의 '내'가 의사표현은 고사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1급 장애인의 평생 반려가 될 미혼여성을 구한다는 인터넷 사이트의 구혼 광고를 발견하고는 그에 응모,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결혼해 살아가는 이야기다.

결혼 직후 세상을 뜬 시아버지로부터 적지 않은 재산을 물려받아 한동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나는 어느 날 집 주변인 경기도 용인 아랫사기막 일대의 불우한 이웃들을 도와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고, 그때부터 극빈층 독거노인들과 장애아 수용 시설인 만나보육원을 찾기 시작한다.

말을 못하는 남편의 마음을 눈빛으로 읽을 정도가 된 나는 무인가 시설인 보육원이 용인 일대 개발 바람에 밀려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과수원을 처분해 보육원 터를 마련하기로 결심하고 남편의 동의를 구한다.

'미화원'은 대상 포진을 제때 치료해주지 못해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뒤 자신도 돌이킬 수 없는 중병에 걸려 택시 회사에서 해고된 기사 김씨가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 정신지체 아들 종수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이야기다. 종수는 모기 한마리가 내는 소리에도 잠들지 못할 정도로 예민하고, 청소와 정돈만큼은 정상인보다 더 알뜰하게 해낸다. 그런 아들의 재주를 눈여겨 본 김씨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종수를 터미널 미화원으로 취직시킨다.

이번 소설집에 묶인 작품들은 한결같이 현란한 수사를 동원한 '눈요기'와는 거리가 멀다. 김씨는 무뚝뚝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간결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전한다.

수사(修辭) 없이 건조하게 이어지는 문장 속에서 극한까지 내몰린 밑바닥 인생들의 삶은 한층 절절하게 되살아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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