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기자의현문우답] 쉿! 들리세요 풍경소리 <1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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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중국의 동산선사(807-869)가 행각을 떠날 참이었죠. 그는 스승인 운암선사에게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았죠. 동산이 물었습니다.

“스님께서 돌아가신 후 누가 스님의 초상화를 그려보라고 하면 어찌 대답할까요?”
 이에 스승이 답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오직 이것이 이것’이라고 말하려무나.”

동산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오직 이것이 이것’이라니 무슨 뜻일까. 결코 간단한 화두가 아니었죠. 동산은 길을 가면서도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앉으나 서나 ‘오직 이것이 이것’만 생각했죠. 그럴수록 스승의 답은 아득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죠. 길을 가던 동산은 작은 개울을 만났습니다. 졸졸졸 흐르는 개울을 그는 건너기 시작했죠. 그러다 문득 아래를 봤습니다. 거기에는 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가 있었죠. 그 순간 동산은 크게 깨쳤습니다. 그리고 ‘부디 밖으로 구하지 말라/그럴수록 더욱 나와 멀어지리라’로 시작하는 ‘과수게(過水偈)’란 유명한 게송을 남겼습니다.

당돌하기 짝이 없죠? ‘스승의 초상화’에 대한 물음 말입니다. 동산선사는 “스승이 깨친 자리는 어떻게 생겼소? 거기는 어디쯤이오?”하고 대단히 도발적인 물음을 던진 거죠. ‘선문(禪問)’과 ‘선답(禪答)’이 오가는 법거량의 세계는 그렇게 가차없죠. 비록 스승과 제자간이라 해도 말입니다.

그럼 ‘오직 이것이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며칠 전 TV에서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인 현각스님의 ‘금강경’ 법문을 봤습니다. 그는 주장자를 ‘꽝!’하고 내려쳤죠. 좌중에 침묵이 흐르자 “이것”이라고 했죠. 또 “쉿!”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처마끝 풍경 소리만 ‘딸~랑, 딸~랑’하고 들렸죠. 현각스님은 “저 소리, 바로 이것”이라고 했죠. 그리고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이것’에서 더 멀어질 뿐”이라고 했습니다.

운암선사의 ‘이것’과 현각스님의 ‘이것’은 둘이 아니겠죠. 도대체 뭘까요.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같은 풍경소리를 들었는데 말이죠. 누구에겐 이것이 ‘이것’이 되고, 또 누구에겐 이것이 ‘저것’이 되고 마는 이유가 뭘까요.

열쇠는 ‘누가 듣느냐’가 아닐까요. 다시 말해 ‘마음을 가진 ‘나’가 듣나, 마음도 놓은 ‘나’가 듣나’의 차이가 아닐까요. 슬플 때 듣는 풍경소리는 슬프기만 하죠. 반면 기쁠 때 듣는 풍경소리는 기쁘기만 합니다. 풍경소리가 슬픈 건가요? 내 마음이 슬픈 거죠. 내 마음이 슬프고, 내 마음이 기쁜 거죠. 그럼 기쁨(喜)도, 성냄(怒)도, 슬픔(哀)도, 즐거움(樂)도 여읜 마음이 듣는 풍경소리는 어떨까요. 그 소리가 바로 ‘이것이 이것’이겠죠.

‘쉿!’ 다시 귀를 기울여 보세요. ‘딸~랑, 딸~랑!’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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